복학 신청을 하고 난지도 어느새 한주가 지났다. 그 한 주 동안 사실 삶은 안정적으로 흘러갔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생각과 결심을 한 한 주였다고 생각한다.
 


모든 삶에는 안정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시절, 불규칙적인 생활패턴과 구체적이지 않은 나의 미래의 모습 때문에 방황항 적이 있다. 밤새도록 개발이란 핑계로 컴퓨터 앞에 살다 보니 살은 1년만에 25kg나 쪘고 그러면서 사실 집중해야 할 프로그래밍을 못한 결과, 당시 준비하던 대회들은 다들 하찮은 성적만 거두게 되었다.

그러다 고교 2학년 말쯤 되어 나는 내 인생의 변화를 시도했다. 컴퓨터를 한 1년 끊기로 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 내게는 사실 처음에는 이게 고통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내가 만든 틀에 내가 맞춰서 행동하다 보니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하루 하루 규칙적으로 사는 것이 즐겁기까지 했다.

20살에 시작한 IT연구로사는 작은 팀의 팀장, 21살부터 시작한 게임회사, 23살부터 시작한 웹 SI와 SM, 그 곳에서 나는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가? 그건 다름아닌 안정적인 삶을 찾기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이다.

나는 성격상 무언가 한 가지에 빠지면 뒤도 안돌아보고 그것에만 올인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특히 개발할 때에 크게 적용하는데, 한 예로 작년 초에 개발했던 다니길 프로젝트에서 당시 나는 살을 빼야했음에도 불고하고 개발 기간인 1개월 동안 운동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새벽 2시에 일어나서 8시까지 하루의 25%를 이에 할애했다.(물론 그 시간은 잠자는 시간과 내 개인을 위해 할애했어야 하는 시간이다.)

대회의 결과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어 살을 빼지 못한 것과 하루 8시간으로 늘어져버린 수면시간 등, 규칙적이지 않은 삶 덕분에 내겐 꾸준함이 결어되어 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살은 늘어져 갔고, 다시 살이 0.1톤에 가까워 진 것도 금방이었다.

그런 내가 2011/06/20 - 로드맵에 따른 인생의 진척 라는 글을 통해 내 인생의 로드맵을 몇 시간에 걸쳐서 완성하고 이에 따라 삶을 맞춰버리면서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는 어떤 것을 의미할까? 글쎄.. 간단히 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 그 것들에 나를 집어넣는 것이다. 단순히는 엑셀 한 셀에 나를 맞춰버리는 것.. 이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렇게 내 삶을 정해진 틀에 맞춰버린다는 것, 그것의 의미를 찾다 보니 다름 아닌 "안정" 이란 것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람은 하고 싶은일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본연의 욕구는 너도 나도 성공하고 싶고 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정신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다.

나도 사람이다. 그래서 내게도 욕심이란 게 있다. 하지만 이를 다 이루기 위해서는 꾸준함이 있어야한다. 하루의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한번에 어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이룰 수 있겠는가?

바로 이 로드맵은 내게 조급함을 없애주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 그것들의 "가능성"을 계속 생각해 보며 얘기치 않게 발생한 어떤 일련의 작업들에 대해, 이에 따라 내 삶을 다시 디자인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게 안정일까, 나는 이런 것이 안정이라 생각한다. 당장에 다가올 내일, 내일 내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안다. 내가 언제까지 살 것도 안다. 10년후, 2022년 2월 9일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도 안다. 그것이 불확실한 삶에서 나를 발견하기 위한 힘들지만 의미있는 시간 투자가 아닌가 싶다.

그렇게 안정이 있다. 하지만 알 수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그것들을 위해서는 또한 가끔은 선택을 해야한다. 사람이 좀 노력을 잘 해서 두 마리 토끼는 잡을 수 있겠지만 멧돼지 열마리는 한번에 못잡는다. 이루기 위한 선택과 집중은 성취와 안정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요소라는 것이다.

지금 나는 복학을 앞두고 5년만에 학교로 돌아가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실은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로드맵에 의거한 삶의 우선순위 계획, 그리고 선택과 집중. 이것이 내게 안정을 가져올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삶 속에서 안정적 삶의 추구라.. 뭔가 나와 어울리는 문장인 것 같은 느낌이 지긋이 드는구나. 그렇게 또 한번 다가올 변화를 생각하며,, 발바닥으로 신호를 보낸다. 움직이라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69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병특을 하면서 한번도 실감해보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내가 학교로 돌아간다면? 다시 학생이 된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다. 병특이라는 시간에 쫓겨, 직장인도 아닌 것이 군인도 아닌 것이, 뭔가 애매한 대우를 받으며 지내왔지만 나는 보다 구체적인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여유를 가지고 싶었고, 개인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사회라는 곳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짤리면 군대다" 라는 생각에 회사에서 닥치는대로 사람들에게 잘보였다. 하루가 다르게 팀장이 내게 하는 얘기는 "사장이 그러더라. '쟤는 대체 뭐하는 놈이야? 하는게 뭐야?' 라고 말이다." 라고 하였다. 그때는 내가 반항심이 참 많아서 그럴까.. 물론 겉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업무도 잘 주지 않으면서 내게 뭐하는 놈이냐니. 참 빈정도 많이 상했을 뿐더러, 나의 존재에 대한 정말 큰 회의심이 있었다. 내가 잘하고 있을까? 나는 뭐하는 놈일까..

그래서 계속 나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프로그래머로 병특을 간 것은 개발력을 썩히기 싫어서가 가장 컸는데, 막상 병특을 오고 나니 내가 하고싶은 웹을 하면서도 기술이 워낙 낙후된 것만 배우다 보니 개인적으로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 아니 회의감보다 더 심한 것은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할지 혼동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게임 사업을 추진할 당시 개발자로써 나름 잘 나가던 친구 한놈에 대한 열등감이 가장 컸는데, 그 친구에 비해 프로그래머를 꿈꾸던 나는 뭐하는 놈일까.. 라는 생각이 컸다.

뭐 지금이야 자바와 특히 오픈 프레임워크를 주축으로 해서 나 자신의 정체성을 잘 성립했고 앞으로 내가 공부해야 할 방향이나 향우 어떤 일을 하고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수없이 많이 해봤다. 풀어져 있는 나 자신을 잡기 위해 매일같이 관리하는 로드맵도 정말 많은 시간을 들여 만들었고, 직업들에 대해서도 수 없이 생각했다.

그러다 지난 2월 1일, 나는 드디어 복학을 신청했다. 복학이라.. 26살 늦은 나이에 2학년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이 복학, 지금 학교에 있는 같은 학년의 학생들은 나보다 5살이나 어리다. 많이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글쎄.. 그들과 제대로 어울리지는 못할 뿐더러, 아마 나는 대학 생활이라는 것보다는 나 자신의 인생에 보다 더 충실해야겠지.

그렇게 복학신청을 하고 나니 21살부터 26살까지, 내가 그동안 사회에서 지내왔던 일련의 기억들이 머리속을 스쳐간다. 처음 게임사업을 진행할 때부터 회사가 이사갔을때, 그리고 인사총무팀으로 발령났을 때, 프로젝트가 망했을때, 병특회사에 합격했을때, 지금회사로 이직 성공했을때. 많은 성공과 실패가 있었지만 그래도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나는 누군가는 5~10년 후에나 생각할 수 있는 일을 보다 빨리 예측할 수 있던 것이다.

그래서 복학을 한다. 복학을 하고, 내가 바라보는 학교의 커리큘럼은 전반적인 내 인생에 있어서 이게 과연 필요한 것인가를 한번 더 돌이켜보게 만든다. 어떤 기술을 배우고 어떤 사회적인 능력을 키울 것인가,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나는 그 부분만 보충해 나가면 된다. 내가 들어온 많은 친구들은 자신들이 왜 이 학과에서 이 과목을 배우는지를 잘 알지 못한다. 그저 "교수가 학점을 잘 줘서" 가 전부인 것 같다. 

인생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남들 다 하는 일반적인 길, 하나는 아무나 시도하지 않는 도전적인 길. 
고등학교때 쓴 일기의 한 부분이 생각난다. "나는 남들과는 다른 길을 항상 추구한다." 이미 중학교때에도 남들 다 진학시험 준비할 때 나는 컴퓨터를 공부하고, 컴퓨터로 대학갈 생각을 한 자체가 다른 방향인 것 같다. 하물며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게임개발과 투자를 통한 본격적 사업을 해보고 싶던 것고 마찬가지이고. 지금도 남들 다 졸업하고 취직할 때 나는 다시 학교로 들어간다는 것도 다른 길로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이상" 만을 허락해주지 않는다. 이상속에 빠져사는 사람은 그저 허황된 몽상가일 뿐이다. 나는 최소한 병특에 오기 전까지는 정말 크나큰 몽상가였다. 하루하루 허구속에 빠져살다가 22살이 되어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접히게 되자 느끼게 되었다. 인생은 단지 열정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노력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이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나의 삶은 분명 내가 설계한 대로 올바른 방향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늦은 나이에 복학하는 것도 두렵지 않다. 늦었다는 생각보다는 안정적인 발판을 마련했다는 생각이 더더욱 강하다!

이제 3월 2일, 병특도 끝나고 복학을 하게 된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내가 그 동안 투자한 시간, 남들과 다르게 걸어온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68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실무에서 웹 프로그래머로 활동한지 올해로 7년차를 맞이하였다. 그동안의 개발자로써 삶을 돌이켜보면 정말로 다양한 경험을 한 것 같다. 물론 병역특례다, 사업이다.. 이것저것 원하든 원치않든 나는 내 삶을 지속적으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맞춰갔고, 그러한 수 없는 고찰속에서 나는 우선은 내가 하고싶은 삶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삶으로 방향을 맞추기로 하였고 3년간의 병특 생활 속에서 빡센 개발과 함께 나는 어느정도 웹 프로그래머로써의 실력을 다질 수 있었다.

 
사실 삶이란 것이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이 블로그에서 수없이 언급했지만 난 처음에는 그저 인터넷이 좋았고, html과 자바스크립트를 통한 웹 디자인이 좋았는데 학창 시절에는 "웹 디자이너" 라는 자체는 좋은 학업으로 이어지기가 힘들었다. 홈페이지 경진대회는 몇차례 수상을 했지만 학생인 당시 신분으로써 내가 컴퓨터와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래밍을 해야했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정보올림피아드" 라는것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2010/06/30 - 컴퓨터, 그리고 정보올림피아드의 추억

뭐 과거 회상은 아주 많이 해봤기 때문에.. 여튼 줏대가 없는지는 몰라도 디자이너도 포기했고, 20살부터 시작한 닷넷 프로그래밍도 병특을 시작하고 1년만에 완전히 자바 프로그래밍으로 돌아섰다. 항상 내가 추구했던 것은 "방향성" 이었는데, 솔직히 나는 프로그래밍에 있어 다양한 라이브러리를 사용한 경험은 있었는데 그러고 나니 내 정체성에 큰 혼란이 빚어졌다. 웹만 좋아하던 내가 GW베이직이니, C,C++이니, 닷넷이니 Direct X니..

솔직히 13살 때부터 10년간은 억지반으로 이런 언어들과 라이브러리를 접했던 것 같다. 그러다 23살때 병특을 시작하고 나서 순전히 웹의 바닥부터 기초를 쌓겠다고 생각하고 들어간 병특의 세계, 첫 회사인 에이전시도 하고 별별 웹 관련 일을 다하던 회사에서 나는 웹과 관련된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물론 회사 대우에 불만을 품고 이직하긴 했지만 그곳에서 배운 다양한 경험들은 아직도 꽤나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슈퍼 웹 개발자.
뭐 이러저러한 경험은 재쳐두고.. 어쨋든 앞으로 한달 정도 후면 대학교로 돌아가게 된다. 기대반, 걱정반인 이 학생 생활에서 나는 어떤 경험에 중점을 두고 나의 3년을 보내야할까? 우선 3년 후, 현실적인 기반에선 나는 취직을 해야한다. 남들보다 한 2년 정도 늦었겠지만, 늦은 만큼 나는 보다 더 확실한 결정을 해야한다. 병특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내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가 "IT 컨설턴트" 라는 진로를 희망하였는데, 지금의 내 희망 진로는 "슈퍼웹개발자" 이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어떠한 아이디어던 빠르게 프로토타입을 생산할 수 있는 웹 개발자" 왜 이런 진로를 결정하게 되었냐면 나는 일단 웹과 관련되서는 어떠한 기술이라도 정말로 흥미가 깊고, 이러한 기술들을 요리조리 활용해서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내 경험은 디자인과 개발을 중점적으로 키워왔다. 그렇기에 기획,디자인,프로그래밍 의 모든 요소를 섭렵하려고 하는 것이다.

뭐 그래 의도는 좋다. 그래도 자만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개발하면서 느꼈는데 내가 아무리 실력이 좋고 경력이 좋던간에 기술은 정말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발빠르게 기술을 접하지 않으면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고, 그 만큼 경쟁력도 약해진다. 물론 웹에서도 필요한 기초적인 기술이 있지만 그것들은 어느정도 삽질의 선에서 마무리할 수 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모르던 풋내기 시절에는 상당히 자기만족에 빠져 "자만" 하고 있었다면, 어느정도 알고 난 지금 입장에서는 정말로 "겸손"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해방
중견기업으로 전직하고 나서 나는 사실 뼈대부터 새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새로운 개발은 거의 해본적이 없다. 그저 기존의 회사 내 프레임워크를 사용해(결국 copy-and-paste지만..) 뼈대만 붙히고 몇몇 수정을 입히는 식이었지. 그야말로 정적인 일들. 재미는 없지만 고정적인 일들. 그런 일들에서 나는 한달 후에 해방된다. 해방이라는 의미를 붙힌 까닭은 아무리 정적인 일이지만 "회사" 라는 곳에 내가 존재하는 일일 8~9시간은 회사에만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싶어도 회사의 방향과 맞지 않으면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나만의 "해방"을 앞두고 있다보니 새로운 시각도 눈에 틔인다. 특히 신기술에 대한 배움의 욕망. 내 개인적인 기술의 트랜드는 2009년에는 닷넷과 자바, 2010년에는 플랙스와 RIA, 2011년에는 html5와 모바일 UX 이런 식으로 발전해왔다. 그리고 지금, html5한국 사용자모임을 운영하면서 느낀 것은 하이브리드 앱 개발을 하고싶다는 것이다. 사실 2009년 말에 나는 아이폰 앱 개발을 하고 싶었으나 당시에는 너무나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였고, 아마 내가 병특이 끝날 쯔음 하면 앱 개발자의 거품이 점점 가라앉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 앱 개발을 포기하였다. 그리고 지금, 내게 "하이브리드 앱" 개발이라는 새로운 배움의 물꼬가 트였다.

하이브리드 앱과 웹 서비스
하이브리드 앱이라.. 2010년 나는 모 은행의 아이폰 앱의 수정을 맡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앱 개발을 해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 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껍데기만 앱이고 속은 웹이었다. 웹 화면에 CSS만 잘 바꿔서 앱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지.. 그때 "기능성 앱이 아닌 정보제공성 앱은 이런식으로 만드는 것이 공수가 훨씬 적게 들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뭐 지금도 대세가 되고 있지만 앱 개발에 있어서 하이브리드 앱은 Cross Platform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웹의 기능도 앱을 따라잡을 것이다. 그날이 점차 머지 않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의 트랜드는 그렇지 않을까.. 아이폰과 안드로이드를 추격하기 위한 후발OS나 플랫폼들의 경쟁과 아이폰과 안드로이드의 WebKit의 폭발적인 발전.. 이에 따른 HTML5와 자바스크립트 엔진의 폭발적 증가. 비단 웹 브라우저 뿐만 아니라 하이브리드 앱에서까지. 어차피 WebKit같은걸 사용할것이기 때문에..

사실 좀 하이브리드 앱 개발은 일반 앱 개발자들이 보기에는 싸보일(?) 수도 있다. 그들 눈에는 html이나 자바스크립트가 언어로도 안보이겠지만 내가 간단히 본 해외의 프로그래밍 시장에서는 이미 자바스크립트는 엄청난 대세이다. 이미 뭐 기술도 Three.js phonegap sencha touch jquery mobile등등.. 수 없이 나오고 있는게 iOS의 프레임워크도 아니오, 안드로이드의 프레임워크도 아니오, 웹을 기반으로 한 자바스크립트 모듈이다.

영어의 중요성
난 솔직히 영어를 잘 못한다. 그저 읽고 한 절반 이상만 해독될 뿐이지, 기초적인 문법도 약하고 어휘력도 부족하다. 근데 영어는 그냥 중요성만 생각하고 있었지, 실질적인 영어 공부로써의 투자는 해본 적이 적다. 기껏해야 주말마다 다니는 영국문화원 어학원이 다인 듯 하다. 


그런데 내가 영어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html5 사용자 모임을 만들면서부터이다. html5 관련 자료가 국내에는 사실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해외의 자료들을 스크랩 하기 시작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사람들의 관심이 컸다. 그래서 html5korea.co.kr 을 만들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번역을 시작했다. 해외 사이트를 뒤져보니 html5 관련 강좌도 많고 정보도 많다. 그런데 막상 번역을 해보니깐 정말 문장이.. 이게 문자만 한글이지, 도통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 내게 시사한 것은 영어를 통한 정보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과 기술을 익히고 트랜드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결국 필요한 것이 영어라는 것이다. 개인적인 욕심으로 나는 향후 미국의 IT기업에서 일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영어가 안되면 이 꿈은 단 1%도 실행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영어를 못하면 html5korea에서 html5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내 생각도 터무니없는 것에 불과하다.

Conclusion
이로써 학생개발자로 돌아가기 앞서 나의 정체성 확립은 끝이 났다. 결국 하이브리드 앱과 영어, 그리고 학업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만큼 심플한 것이 어디있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개발을 하면서 용돈벌이도 하고, 좋아하는 프로그래밍 공부가 결국 학업과 연결되고. 하기싫은 영어지만 어쨋든 하고 나면 내가 습득하는 트랜드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고 말이다. 문제는 말뿐만이 아닌 실천이 되야 한다. 여태껏 해온 나의 망상을 버리고, 이제는 학생 개발자로써 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공부와 연구에 집중하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68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06년, 20살]

더보기

 

[2007년, 21살]

더보기

 

[2008년, 22살]

더보기

 

[2009년, 23살]

더보기


[2010년, 24살]

2010년 1월~8월 더보기


(길고도 길었던 비동의 전직의 과정)


더보기


[2011년, 25살]
2011.01 네이버 대회 준비로 인한 플랙스 카탈리스트와 구글 앱 엔진 등의 삽질. 설날 이전까지는 마음이 잘 잡히지 않았으나 설 이후 본격적으로 하루 3시간씩 자며 대회 준비.
2011.02 네이버 대회 준비. 처음에는 미완성 버전으로 제출했으나, NHN측의 배려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기로 함. 월말에 학생부 "금상" 이라는 좋은 소식과 함께 2000년 이후 11년 만의 대회 입상. 여자친구와 부모님께 나름대로의 인정. 그간 나를 괴롭혀온 카드 모두 해지 및 흑자 생활로 전환.
2011.03 네이버 대회 수상과 처음으로 세미나 자리에서 PT발표 진행. 
2011.04 상암동 모 프로젝트에 투입되며 처음으로 Spring Framework를 다루게됨. 걷기 다이어트에 돌입했으나 실패. 페이스북에서 html5 korea 를 만들고 간간히 포스팅 함.
2011.05 html5의 Oreilly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html5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html5 한국 사용자 모임 홈페이지를 만들기로 결심. html5korea.co.kr 등록
2011.06 아버님과의 또 한차례의 말다툼에서 나의 헛된 자존심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인생의 목표를 세워 꾸준히 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됨. 이에 "아이젝트 로드맵" 을 만들게 됨. 그리고 영국 문화원 등록
2011.07 cloie의 취업소식과 이제 본격적으로 목표를 이뤄야겠다는 생각에 다이어트와 영어에 돌입. 본격적으로 html5korea.co.kr 에 번역할 글들을 올리기 시작. 첫 토익 성적에 대한 엄청난 실망.
2011.08 어느정도 다이어트 성공(-10kg) 하지만 여러가지 원인에 의한 방황 시작.
2011.09 방황의 연속. 술에 대한 고찰. 패션에 대한 관심 증폭으로 인해 본연의 목적 상실
2011.10 본격적인 토익 공부를 위해 학원 등록. html5korea 번역 계속. 하지만 로드맵에 자꾸 X표가 많아져서 실망하게 됨. cloie와의 천일, 그리고 내가 존경하던 스티브 잡스의 사망.. 
2011.11 html5 에 대해 본격적으로 투자하게 되고, 번역도 계속. 사이트에 대한 방향을 잡음. 그리고 인생 100년 계획을 세움.
2011.12 계속된 html5 번역과 소집해제 100일이 깨지게 됨. 동시에 향후 복학 이후에 대한 생각과 삼성 맴버십에 지원.


2011년은 뭔가 여타 년도와는 다르게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준 것 같다. 연 초에 이룬 것부터 하여 5월부터 아이젝트 로드맵을 설계하고 이에 따라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차근 차근 이뤄나가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너무 나 자신을 나만의 로드맵에 가둬 놓은 결과, 자꾸 탈출하려는 욕심이 생겼고 이에 8월부터 10월까지 시작된 방황은 솔직히 너무나도 시간이 아깝다. 뭔가 정리되지 않은 시간이었고, 잡혀지지 않은 로드맵 속에 자꾸 방황만 일삼고 술과 놀기만을 좋아하고 자기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이렇게 후회로운 삶이 또 있으랴.

그래도 연말이 되어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내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잘한것이다. 눈앞의 것에 눈이 멀어서 미래의 것을 버리겠는가. 당장의 초콜릿의 단맛에 내 살을 다 버리겠는가. 그런 생각보다는 새벽에 커피 한잔에 내 삶을 관리하고 그런 것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그리고 요즘에 글을 쓰는 것을 귀찮아 하는 것인지.. 블로그에도 온통 번역한 글 밖에 없고 생각을 정리하려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귀찮고, 또 이것 저것 생각이 많이 들다 보니 자꾸 이를 정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생각이 드는 대로만 작업을 하려고 한다.

얼마전에 나는 정진호 님의 GTD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보았다. 여기서는 일을 쉽게 하기 위한 "가공"을 중시하였다. GTD방법론은 물론 나도 예전부터 많이 알고 있던 것이긴 하지만 정작 사용에 있어서는 닥친 업무만 처리하느라 급급하였다.

무언가 일을 정리할 시간을 만들고 나의 미래를 볼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이 포스팅을 하는데만 해도 내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물론 무언가를 하다 보면 분명 예상하지 않은 대로 시간이 흘러가고 조절될 테지만, 최대한 한가지만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런 선택과 집중이 확실히 되는 2012년을 보냈으면 한다. 

학생이라.. 너무 오래되서 20살 때의 기분은 잘 모르겠다. 나이도 들고, 사회의 물도 먹어봤고..그러면서 자라는 것이고 그러면서 크는 것이다. 후회 없는 한 해를 보낼 수 있도록! 이 포스팅을 통해 화이팅을 외쳐본다 화이팅~!


2009/05/30 - [IZECT PERSONAL LAB/아이지의 이야기] - 20대 초반, 나의 발걸음
2009/12/31 - [IZECT PERSONAL LAB/아이지의 이야기] - 20대 초반, 나의 발걸음 part 2 # 병역특례 1년차를 돌아보며
2011/01/20 - [IZECT PERSONAL LAB/아이지의 이야기] - 20대, 나의 발걸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TAG 2012년, 20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685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제이티민 2012/01/30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들렀다갑니다^^ 저와 코드가 많이 맞는다 싶어 얼마전부터 즐겨찾기해 글한개한개 다읽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이런 글많이 써줘서ㅎㅎ


저는 웹 프로그래머입니다.
초딩때부터 HTML을 시작했으니 벌써 15년이나 웹과 함께 살아왔네요.
물론 중간에 디자이너를 꿈꾸며 웹을 멀리하기도 하고, 입시 프로그래밍(?) 덕분에 C랑 친해지기도 하고..
실제로는 20살부터 웹 SI에 뛰어들기 시작했는데, 올해가 5년차 입니다.
닷넷과 자바를 택하자면 자바를 주로 하고, 오픈 소스를 좋아라 합니다.

뭐 그렇긴 한데..
여튼 저도 웹에 관심이 하도 많아서, 특히 2년 전 RIA에 관해 깊히 빠져들면서
웹 상에서도 이렇게 일반 어플리케이션 처럼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
그때는 닷넷을 하고 있어서, WPF로 만들어진 이쁘장한 Vista계열의 UI가 Silverlight에서도 쓰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보다 보니 Adobe에서 플렉스가 있더군요. 이 또한 나름대로 이쁘장한(?) UI를 가지고 웹에서 어플리케이션 처럼 만들 수 있다는 매력에 푹 빠졌었습니다.

그런데 UI만 이쁘장하게 하면 뭐합니까. 뒷단에 로직이 잘 돌아가야죠.
그래서 보면 참 개인적으로 Adobe Flex에 낑겨 맞출 수 있는 오픈 소스 기술들, 특히 BlazeDS에 매료됬었었죠.
따로 XML이나 JSON을 통해 C/S통신을 할 필요도 없고, 설정만 슥삭슥삭 세팅만 잘 해주면 심지어 플랙스 내에 Class랑 DB객체가 맞물리게 되더랍니다... 거 참 신기하네. 마치 JNDI처럼 말이죠.
그렇게 Flex어플을 만들었고, 또한 Adobe Catalyst를 통해 딱히 플래시를 안써도 Animation 및 custom ui를 구현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플래시의 속도와 호환성이었습니다. 뭣보다 스마트폰이 이렇게 엄청나게 보급된 시점에서, 특히 아이폰에서 플래시 안되는 것은 치명적이더군요. 제가 아무리 컨텐츠를 잘 만들면 뭐합니까, 폰에서 보이지가 않는걸요..

웹을 통해 접근하는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PC에 앉아서, 컨텐츠를 탐색하다가 들어오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인터넷을 검색합니다. 최근에 나온 아이폰 4S의 Siri의 경우, 엄청나게 쉽게 스마트하게 웹의 정보를 찾습니다. 여기에는 심지어 html 페이지 조차 필요하지 않습니다. Text로 된 정보만 있으면 되니깐요.

그런 구조화되면서도, 브라우저에 모두 맞게 돌아갈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 주는 것이 html5 인 것 같습니다. 사실 html5의 테그들만 봐도 지금까지는 솔직히 canvas나 video, audio, form 테그 외에는 문서를 완전히"구조화"시켜주는 테그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CSS와 요즘 나오는 자바스크립트 프렘워크를 통해 사이트를 만들어 나갑니다.

사실 개발자에게 html5가 큰 의미가 있을까요? html5가 나와도 저희는 ajax를 만들고 어쨌든간에 back-end단을 만들고 데이터를 표준화된 포멧으로 전달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프로그래머가 기존과 다르게 할 일이 있을까요?

글쎄요. 하지만 이제 웹은 점차 2D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니, 기존 웹들은 2D조차 아니였죠. 글,이미지,동영상 등으로 구성된 문서였죠. 하지만 이제 점차 다이나믹 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자들은 어떻게 해야 경쟁력을 가질까요?

글쎄요, 저는 일전에 게임개발 업체에 있으면서 그곳에서 게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봤는데, 프로그래밍은 서버/클라이언트 로 나뉘면서 또 서버는 AI니 NPC니 그런 인공지능 서버가 있고 분산처리 프로그래밍 하는 쪽이 있고 클라이언트는 코어가 있고 UI가 있고 툴 개발자 등등.. 뭐 그렇게 세분화 되더랍니다.

아마 웹 프로그래밍 세계도 이렇게 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html5가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부분은 다름아닌 UI개발이 아닐까요. 

점점 뭐랄까, 표준화된 UI들, 이쁘장한 UI들이 무료로 배포되고 있습니다. 특히 모바일 부분에서 말이죠. 나름 Sencha Touch니 jQuery Mobile이니 얘들 참 이쁩니다. 이런 식으로 스킨만 입히면 완성되는 프렘워크들이 슉슉 나오고 있지요.

그런 환경 속에서 저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음.. 
갠적으로는 개발자는 또한 디자인도 알아야 하고, 퍼블리싱도 알아야 하고 기획도 알아야 하고..
그런 슈퍼 웹 개발자가 되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무래도 그게 개발자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요소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

주저리주저리 해봤습니다. html5가 도래해도, 딱히 개발자 입장에서 뭐가 달라질 것이 있는가 싶네요. 그 전에, 제 포지션좀 정리좀 해야겠습니다. 포커스 온을 해야 하는가, 두루 알아야 하는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67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여러모로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 하루인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드물고, 여유라는 것을 구경해 본 지도 오래된 것 같다. 얼마나 시간이 바쁘게 흘러가는지, 1100일 부터 시작한 병역특례도 이제 120일 남짓 남게 되었고, 그간의 거의 1000일 가까운 시간동안 나는 여러가지 사회 활동을 통해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남모르게, 아니 심지어 나 자신도 모르게 배워 오고 앞으로의 나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나가야 할 지 미래에 대한 로드맵을 정확히 확립할 수 있었다.

일단 웹을 지향하는 프로그래밍, 기획, 디자인을 모두 하고 싶어하는 개발자로써(물론 프로그래머 적인 성향이 가장 크지만) 기술적인 입장에서 웹 쪽은 물론 단순히 php asp jsp 등의 view단의 언어가 있겠지만, 보다 더 실무에서 요하는 것들은 Enterprise 했다. CMS, Groupware, Portal 등의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통합적인 개념의 모델이 필요했고, 그런 모델의 의미에서 웹 기술은 두 개의 코어적인 기술로 나뉘었다. 자바와 닷넷이이다.(2009/11/16 - [IZECT DEV LAB/웹 프로그래밍] - 자바는 돈되고, 닷넷은 돈 안된다?)

2008년까지 2년여간을 기초적인 프로그래밍 언어에 중점을 두고 공부했던 나는 2009년에 본격적으로 웹 개발의 길에 뛰어들었다. 운 좋게도 이 두 기술을 모두 대규모 시스템에서 유지보수 할 일이 생겼다. 대다수의 중소 기업의 Maintence 부서가 그렇듯, 나 역시도 모 소기업의 개발 및 유지보수를 모두 전담하였고 혼자서 유지보수 하는 서비스가 약 5개 정도 되었다. 지금까지 수 많은 사이트를 유지보수 및 개발하면서 느꼈는데, 대규모 시스템의 경우는 자바 아니면 닷넷이고 보다 더 웹쪽으로 코어적인 부분이 아닌 일반적인 View를 지향하는 서비스의 경우는 jsp php 정도이다. 게다가 asp같은 언어로 된 사이트도 많은 것이 2000년도 쯤 IT붐이 일어났을 때 개발된 서비스들(특히 사내에서 사용하는 사이트들) 태반이 asp인 것 같다. 아마도 asp로 개발해야 서버도 사고, 윈도우도 사고 해서 원가가 올라가서 매출증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당시에는 java의 middle ware 도 많이 없었을 테니..) 

말하다 보니 이야기가 많이 새어버렸다. 여튼 자바(Spring기반) 와 닷넷(.net 2.0) 을 사용하는 사이트를 동시에 유지보수 하다 보니 보다 더 많은 오픈 소스를 응용하여 강력한 자동화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자바의 기능에 나는 엄청나게 매혹되었다. 그리고 2009년 말에 나는 자바로써의 길을 간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다.(2009/11/09 - [IZECT DEV LAB/웹 프로그래밍] - 자바 웹 프로그래밍 책 도착 +_+) 이는 앞으로도 내 인생의 가장 큰 선택이 아닐까 싶다. 자바의 길을 택함으로써 수 많은 오픈소스들을 접하고, 이해하면서 정말 나의 개발자로써의 삶은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른다. 자만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 개월동안 수 명이서 개발해야 할 대규모 시스템에 대한 모듈을 이젠 내가 사용했던 오픈소스들을 취합해서 혼자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쌓았다. (물론 실존하는 오픈소스는 너무나도 많아서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장담은 못한다.)

어느정도 배웠다 싶은 내게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야 하는 그런 시간이 찾아오고, 나는 웹 개발자로써 내가 웹 세상에 어떤것을 기여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프로그래머보다 디자이너를 꿈꿔왔던 나이다. 95년부터 html, java/vb script, dhtml 을 만져왔으니 벌써 16년째 웹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학생 신분으로 한계도 많았지만 웹을 디자인 할 때, 프로그래밍 할 때, 그리고 사이트를 기획할 때, 무엇보다 백지에 사이트를 그려나갈 때 난 솔직히 희열을 느낀다. 정말 그 시간만큼은 내가 그 일에 미쳐버리는 것 같다. 사이트를 예쁘게 꾸미는 것부터 해서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정보를 주고 편의를 주며, 또한 나의 의도대로 유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웹을 개발함에 있어서 딱히 플밍,디자인,기획,DB,코더 등 세분화 된 개발직군이 아닌 웹 개발을 하는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두루 가지고 있는다면 보다 더 빠르고 직관적인 개발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빠른 협업에서 만들어지는 웹 개발이 가능하다면 같은 시각에서 웹을 사용하는 사용자의 입장을 심도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어 결론적으로는 웹 세상의 편의적인 발전에 힘을 보탤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이런 생각을 정리해가는 와중에 작년 말쯤 html5를 만났다. (2011/05/25 - [분류 전체보기] - HTML5에 미래를 걸다.) html5는 쉬운 코딩과 강화된 자바스크립트 api, 그리고 디자인적 입장에서 그간 수 없이 많이 사용되어 왔던 css의 기능을 강화시킨 css3 등을 통해 표준화 되면서도 진보된 웹 개발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웹 기능의 표준 프레임워크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지금같은 스마트폰 시대에 모바일 프레임워크에 집중하여 모바일까지 두루 표준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는 html5와 모바일 프레임워크에 대해 공부하다가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를 취합할 목적으로 페이스북 커뮤니티인 html5 korea를 만들었다 이어 "html5 한국 사용자 모임" 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단순히 html5자료를 취합할 목적으로 만든 이 커뮤니티가 본 블로그의 위젯으로 추가해 놓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픈한지 4개월 만에 200명 이상의 "좋아요" 를 받으면서 정말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커뮤니티 페이지를 만들면서 동시에 커뮤니티의 홈페이지인 html5korea.co.kr 도메인을 등록, Xpress Engine을 얹혀서 사이트를 만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oreilly 사의 HTML5 Mobile Web Development 라는 인강을 들으면서 내 나름대로 번역하여 놓을 만한 공간이 필요하여 만들어 두었는데, 욕심일까. 이참에 html5와 관계된 외국의 양질의 문서들을 번역하고 이를 토대로 국내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서 운영할 생각으로 나름대로 로고도 만들고 메뉴구상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html5 에서 내가 기대하고 있는 "모바일 웹" "CSS3" 등의 카테고리를 담고 html5 뿐만 아니라 웹 프로그래머/디자이너/기획자 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 접할 수 있는 웹 개발의 전반적인 커뮤니티로 나아가도록 생각하고 있다. 정말 솔직히 의도는 좋은데 아직까지도 어떤 식으로 사이트의 레이아웃을 구상하고 사용자들의 활동을 유도해야 할 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커뮤니티에서 "불펌" 을 하지 않는다는 룰(rule)을 세웠다. 그러다 보니 자료가 많이 없다. 아직 대부분의 글이 내가 스스로 외국에서 찾고 번역한 글이다. "창작"은 아니지만, 적어도 불펌은 아니고, 원작자를 표기하고 나 나름대로 "번역"이라는 수고를 가했다. "불펌"이 없는다는 것은 그 만큼 컨텐츠 생산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결론적으로는 양질의 컨텐츠 생산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거창한 계획을 세운다 해도 나 또한 실생활에서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한계가 분명 존재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일이 바쁠 때에는 사이트가 몇주 씩 운영이 안되고 새로운 글 또한 올라오지 못한다. 가입자는 100명이 넘었는데, 아직도 활발한 커뮤니티 운영이 되지 않고 있다.

무엇때문일까? 일단 사이트의 메뉴 자체가 너무 많다. 욕심을 너무 부려서일까, 아직 어떠한 글도 올라오지 않은 게시판이 많다. 나 자신도 html5 관련 사이트들과 awwward같은 디자인 갤러리 등의 RSS를 구독하면서도 몇일 씩 읽지를 못해서 쌓이곤 한다. 하지만 사이트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고, 정보를 양산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정보를 접하고, 이를 번역하는 능력과 기술적으로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7월부터는 영어의 중요성을 깊히 인식하고 작게나마 TOEIC을 시작하였다. 물론 이러한 문제풀이 방식의 시험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 주변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나의 영어에 대한 기본기를 잡아주는 데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다만 시험 공부때문에 시간을 더욱 더 할애하지 못하여 더욱이나 사이트가 더 운영이 안되고 있다 생각되지만, 그래도 전보다 더 매끄러운 번역을 맛보게 되니 좋은 것 같다.

여튼 올해 내로 내게 주어진 숙제는 보다 효율적인 컨텐츠 양상과 사이트의 구조적인 정리, 그리고 사용자 접근성이다. 여기서 접근성은 "웹표준" 같은 접근성이 아닌 UX적 측면에서의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편의를 말한다. 굳이 회원 가입을 통한 사이트 운영이 아닌 facebook connect 등의 소셜 로그인 제공, 그리고 메타 데이터를 통한 타 reader에서의 컨텐츠 접근 등이 내게 남은 과제이다. 

회사에서는 점차 병특 말년으로 업무적으로도 점차 정리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물론 이번주는 좀 빡쎈 일정을 보냈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해서 내가 설계한 html5 sharing reader로써의 길을 잘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66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늘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전해준 소식이 있었다. 바로 애플의 전 CEO 이자 아이폰,아이패드 등 혁신을 주도해 온 IT산업의 신화와도 같은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이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지만, 이내 애플 미국 공식 홈페이지에서 그의 사망소식을 확인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잡스는 내게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의 창의력은 물론, 그가 보여준 개발자로써의 열정, 사업가로써의 열정, 그리고 크리에이티브로써의 열정은 지금 나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에 매우 큰 도움이 되었으며 내 인생의 로드맵을 설계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의 PT능력이나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캐치해 내는 능력 등, 그리고 소프트웨어에 생명을 담는 모습 등 무엇 하나도 빠짐 없이 그는 천재적인 크리에이터이자 리더였다.

그를 존경한다. 더 많은 내가 동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IT의 별이었던 그의 사망이 더더욱이나 내 가슴에 깊은 슬픔을 전해준다. 사실 여태까지 IT를 이끄는 혁신적인 인물의 사망 소식을 접하지 못해서일까, 마치 나의 가족을 잃은 것처럼 슬프다.

그의 유산 중 하나인 맥을 사용하면서 내가 정적인 개발자의 시각에서 얼마나 다양하고 유동적이며, 다이나믹하게 생각이 변했는지 모른다. 그는 분명 미래의 우리들의 삶에 비전을 제시했고, 우리들의 삶, IT를 통한 인간의 삶의 진보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나 또한 IT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써, 그의 이러한 정신을 가슴 깊히 새기고 있으며 진정한 IT 업계 사람들의 생각이 이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의 사망은 정말 내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것 같다. 이렇게 그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다. 열정도 좋지만, 무엇보다 나를 믿고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건강을 잃어 슬픔을 주는 것은 가슴아픈 행동이라 생각한다.

잡스 아저씨, 당신을 알게 된 지난 10년여간 제게 많은 생각과 진보를 가져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하늘나라 가셔서 편안히 쉬세요. 저도 당신의 IT에 대한 정신을 제 모든 행동에 쏟겠습니다. 비록 저를 알지는 못하겠지만, 제게 많은 것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66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엊그제는 블로그 계정이 해킹당해 내 블로그에 원치 않은 카지노 등의 광고성 글이 올라왔었다. 순간 아 이런게 네이트온 개인정보 유출 사건등의 피해인가 싶었다. 비밀번호가 아주 어려운게 아니라서, 특히나 연달은 숫자와 문자가 혼합되어 있다 보니 이렇게나 쉽게 유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 때문에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네이버나 공인인증서, ISP등 약 50여개의 내가 기억하는 중요한 사이트들의 비밀번호를 조금 복잡하게 바꿔놨다. 하지만 해킹한 사람이 블로그 세션이 남아있어서 그런지 계속 올리더라. 덕분에 트위터와 페북과 연결해 둔 내 블로그의 글들이 트위터,페북 등으로 퍼져나갔다. 


사실 나는 이런 개인정보 유출에 화가 난다기 보다는 이렇게 내 블로그가 이렇게나 방치되었다는 사실에 나 자신에게 좀 화가 많이 났다. 이번 내 블로그의 해킹도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무신경하고 있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소셜 네트워크, 특히 페이스북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블로그에 글이 거의 없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블로그 자체가 나름 장시간 생각해서 글을 써야 하고 게다가 블로그 방문하는 사람도 생각해서 글을 쓰다 보면 SNS는 뭐 기껏해야 잠깐 생각해서 글을 쓰기 때문에 SNS에 더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최소한 팔로워나 친구들에게는 이 글이 한번쯤은 보여지겠지? 라는 생각에 짧은 단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짧게짧게 그때그때 생각나는 걸 적다 보면 나는 생각을 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것 같은데, 사실 그건 결론이라기 보다는 그저 작은 글조각일 뿐이다. 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내글 검색 기능이 없겠는가? 나는 결국 매일 무한대로 생성되는 SNS의 글은 단지 소통을 위한 존재이지, 그 글 자체의 가치를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말은 할 수 있지만, 소설처럼, 아니면 논문처럼, 아니면 스티브 잡스처럼 발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이야기 하고자 한 것을 준비했기 때문에 멋진 PT나 책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SNS에서 짧게 생각해서 말하는 글 보다는 블로그나 일기를 통해서 나름대로 한번 더 생각해보고 꾸며나가는 글이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런 지속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특히나 나의 경우는 요 근래 알 수 없이 나태해져만 있다. 7월 말쯤에 한주 정도 휴가를 다녀 왔는데, 그 이후로 계속 슬럼프였다. 영어 공부나 운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계획의 10%도 실천하지 못하고 8월까지 약 한달을 보내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사실 안타깝다는 생각은 단지 머릿속에서만 살짝 나오고 있다. 이러한 것은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다. 

그래서 계속 생각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어떤 주제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내 머리속의 어떠한 것이라도 고찰하기 위해서. 그리고 쓸때없는 생각이라면 빠르게 제거하기 위해서. 여러모로 글을 쓰는 행동은 필요하다. 

근황

최근의 나는 병특 기간도 이제 190일 아래로 떨어지고 반년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 반년이란 시간도 분명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하면 보다 더 효과적으로 보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2011년이 그렇게나 중요했는데, 다행히 상반기에는 살도 10kg감량하고 대회도 수상하고.. 내 나름대로는 큰 일을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2011년이었지만.. 그래도 슬픔을 잊고 나름대로 다이어트에 일차적으로 성공했고, 균형잡힌 삶을 살고자 노력했고, 조금은 성과가 있었다. 긴 슬럼프가 있긴 했지만, 이제 다시 마음을 잡고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나저나 요즘에는 특히나 영어의 중요성을 깊게 인지하고.. 사실 약 한달 전에 토익 시험을 봤는데, 내 생각외로 시험의 세계는 단순했다. 구조적인 것보다 정말 문제는 문제 그 자체였다. 출제자의 의도를 묻고, 해석이 되서 의도대로 정답을 고르는.. 그런 시험을 나는 솔직히 수능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의도를 알고 나니 더더욱이나 영어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이제 곧 친구들도 2학기가 개강하는데, 나도 내년에는 바로 복학을 하게 된다. 복학 이후에도 분명 공부를 하면서 계약직으로라도, 혹은 프리랜서로 개발 일을 계속 하려고 하는데 확실히 나름대로 정규직(?)이던 병특때나 20대 초반의 회사생활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아니면 아이디어를 좀 더 구체화 해서 사업을 할 생각도 하고 있는데.. 아직 모든 것은 확실치 않다. 무엇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겠지만.. 이 상황에서 다시 개발에 손을 내려놓게 된다면, 또 다시 잡기까지 나는 그 고통을 알고 있기때문에.. 

 여하튼 여러모로 봤을 떄엔, 내가 고민중이고 아니면 생각에서 정리되지 않은 현상들을 나는 블로그에서 글을 쓰는 활동을 하나의 방법으로 삼아야 겠다. 어차피 블로그라는 게 꼭 남이 봐주기 위해서 작성하는 공간은 아니지 않는가? 좀 더 인생의 길에 있어서 깊은 고민을 할 수 있도록 한번 해보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65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마하반야님의 "마하반야가 블로그를 시작한, 그리고 계속하는 이유" 를 보고 느끼는 것이 많다.

요즘같이 SNS가 활발하게 도래한 시대에, 블로그는 사실상 몇몇 매니아나 파워블로거들을 제외하고는 많이들 SNS로 떠나가는 추세이다. 보다 편하게 생각을 공유하고, 블로그처럼 글을 굳이 장편으로 쓰지 않아도 되고, 사진,동영상,링크 등의 기능으로 쉽게 컨텐츠를 공유하고, 개개의 글조각으로 하이퍼링크를 생성한다.

편리하다. 그리고 쉽다. 그렇게 쉬운 만큼 사람들은 어느덧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시스템에 익숙해져 간다. 작년까지만 해도 페이스북의 사용법을 몇번씩이나 알려줘도 어려워 하던 전회사의 모 이사님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분, 지금은 열혈 페이스북 이용자가 되어 친구도 몇백명이 되더라. 트위터는 또한 어떠하리, 가입도 쉽겠다. 글만 쓰고 팔로잉/팔로워 하고 멘션하고.. RT등의 용어는 이제 생소한 용어가 아니다. 9시 뉴스에서 조차 트위터 맨션 이라고 말할 정도이니깐 말이다.

나 또한 최소한 하루에 5~10 여개의 글조각을 SNS에 기록하는 것 같다. 사실 처음 내가 팔로워도 없고, 페북에 친구도 별로 없던 시절에야 내가 기억하고 싶은 내용들을 기록하는게 다였는데, 친구도 많아지고 팔로워도 많아지면서 "뭔가 상대방에게 이 글이 어떤 주목을 받고, 이러한 관심사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나의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솔직히 말해 목적이 이러한 온라인에서의 활동이 오프라인의 내 가치를 올려주기를 바라면서 글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 이런 말을 여기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나란 인간이 참 얼마나 가식적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게 사람의 본연적인 욕심일까? 이러면서도 나는 나의 사생활이나 관심사에 대한 SNS활동을 끊이지 않는 것 같다.

블로그는 내게 어떤 존재로 존재해왔는가. 

 

그러면서 점점 이 블로그는 버림받고 있다. 나름대로 2005년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으로 6년간 1600여개의 글을 써 왔는데, 그렇게 글을 써 감에 있어서 나는 스스로 내가 발전해 나갔다고 자부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 처음에는 혼자 놀던 공간이 피드 기술의 발전과 메타 사이트, 검색엔진 기술의 발전으로 어찌 보면 나는 당장의 나의 관심사에 대해, 혹은 생각에 대해 적어놓은 글들을 사람들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SNS의 추천 기능 이전에는 댓글이나 방문자가 나의 생각에 관심있어 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나타내 주었고, 이러한 관심 속에 나의 관심 역시 높아져만 갔다. 

그러한 관심은 실제 내가 글을 적는 주체인 생각에 대한 또 다른 깊은 고찰을 가져왔다. 초창기만 해도 블로그 제목을 "음악, 책, 피아노, 마케팅, 그리고 사업" 로 할 정도로 나는 그저 내가 관심있어 하는 부분에 대한 고찰을 블로그에서 하길 바랬다. 그래서 블로그의 카테고리부터 대부분의 글은 내 관심사로 바뀌어갔다. 무엇보다도 포스팅을 쓰는, 그러니깐 글을 쓰는 자체가 나의 머리속에 널부러져 있는 생각을 하나의 글로 정리함으로 인해, 혹은 정리를 하기 위해 다시 한번 웹 서핑을 통해 새로운 자료를 수집함으로 인해, 생각이 정리되고 그러한 생각정리는 결국 밑거름이 되어 한층 더 깊은 사고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블로그의 절정과 결말


분명 블로그는 그렇게 내게는 생각을 정리하고 한층 더 발전된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이놈의 욕심이 문제일까, 혼자서 하는 블로그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웹 2.0이 도래하고 참여,공유,개방 이라는 명목 하에 메타 블로그들의 등장과 공유 기능이 등장하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메타 테그의 글에 대한 숫자라던가, 방문객에 따른 구글 애드센스 등의 수입 등이 실제로 수치화 된 관심도가 눈에 보이자 이제는 블로그를 유입하는 사람들에게 초점이 가게 되었다. 이때 눈치챘어야 하는 것은, 이 생각이 내가 블로그에 대해 생각했던 초심을 잃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마치 내가 유명인이라도 된 것처럼, 자꾸 방문객들에게만 신경을 쓰고 솔직한 심정으로 낚시질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는 나름대로 내 블로그에 "아이젝트 랩" 이라는 이름과 "make yourself in web" 이라는 부제를 붙혀주며 내 블로그를 본연의 목적대로 내가 관심있어 하는 부분에 대한 생각 정리의 툴로 사용하려 했었다. (아이젝트 랩이라는 의미는 내 닉네임 '아이지' 와 '프로젝트' 의 합성어로 결국 나의 관심사나 생각 들을 프로젝트로 정의하고 이에 대한 연구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지금의 블로그는 뭔가 억지로 사람들에게 최신의 정보를 전파하려고 의도적으로 꾸민 느낌이 난다.

사실 이러한 결과로는 고정 방문자가 끊겼다는 것도 한몫 했다. 예전 네이버 블로그때나 텍스트 큐브때나 기타 간간히 블로그를 운영할 때에는 정말 얼굴도 모르는 아이디만 아는 지인분들의 고정 방문으로 그들과의 소통이 즐거웠다. 지금도 몇몇 분들이 SNS에 계시는데, 검색해서 방문하는 다른 방문객에 비해 나에게 정말 깊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적나라한 조언도 서슴치 않아 하는 모습에서 온라인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관계를 구축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방문자들이 처음에 네이버를 떠나며 이웃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하니 모두 떠나갔고, 텍큐닷컴이 없어지자 떠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나 홀로 내 블로그를 지키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다음뷰의 숫자나 방문자, 애드센의 금액은 정말 어떤 의미가 있나 싶다. 되려 그러한 방문자를 얻고자 내가 블로그 억지로 운영하는 느낌도 든다. 정말로 내가 이를 원해서 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여러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는 것은 분명 좋은 것이지만, 되려 블로그의 방문객이나 좋아요 숫자가 줄어들면, 관심이 없어서 블로깅 하는게 재미 없고, 무슨 블로깅이 재미삼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SNS의 등장


그러다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만났다. 난 이러한 소셜 기능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데 있어서 정말 좋은 수단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는 트위터러 들의 트윗들은 귀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내가 트윗을 하며 느낀 것은 결국 내 자신이 완성되지 않고, 아니면 내가 무언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 프로필이나 트윗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솔직히 관계 형성에 목적을 두고 내가 트위터를 했을까? 팔로워 숫자에 민감해서, 그 만큼 내가 마치 인기인인 마냥 얼씨구나 무차별 팔로잉만 해댄 것은 아닐까.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가식적 낚시성 트윗을 연발하고, 프로필을 있어보이게 꾸민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트위터 하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페이스북을 했다. 페이스북은 나름 실명 위주이다 보니 정말 오프라인의 관계가 그대로 온라인에 반영되곤 하였다. 몇명을 빼놓고는 죄다 중,고,대학교 친구들이다. 그리고 추가로 형성되는 인맥도 그들에게서 파생되어 갔다. 정말로 오프라인의 네트워크가 온라인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친구찾기라는 무서운 기능으로 인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SNS가 되려 역효과가 된 것은 서론에도 언급을 했지만, 정말 내가 실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이고 정말 실제로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나의 활동을 알리는 글을 쓰다 보니 전보다 더더욱 신경쓰인다. 뭔가 내가 원하는 나의 이미지가 있는데, 자꾸 그러한 이미지에 맞추려고 하다 보니 이건 뭐 블로깅을 할 때보다 더 가식적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는 무언가 신사다운 이미지를 가지고 싶어한다. 그러면 페이스북에 내가 평소에 즐겨보는 신사들이 많이 나오는 영화가 무엇이고, 그곳에서 느낀 생각이 무엇이고.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스타일을 따라해 봤는데, 쇼핑하다가 한컷 이러면서 글을 올리고.

나는 외로움을 잘 견디지 못한다. 물론, 고독함은 즐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잘 못견디지 않을까? 그래서 주목받고 싶어하고.  특출나고 싶어할 것이다. 이러한 것은 결국 개인의 개성을 생성하고, 삶에 방향을 만들어 가는 데에도 실질적인 한 몫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는 함정이 있다 생각한다. 바로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해 진다는 것이다. 당장에 내가 마음에 들어 산 옷을 페북에 올린다 친다. 친구들의 의견이 좋다면, 이런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럼 그것은 개성일까? 아니면 그저 대세에 불과한 것일까?

판단은 자유이고, 남의 의견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나 듣고 반영하는 것. 모든 것이 자신의 판단이다. 나의 경우는 결론적으로는 보다 더 블로깅을 자주 하고 남의 시선과는 상관 없이 나의 주장이나 생각을 정리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SNS는 소통의 수단이지, 사회에 나를 가두는 툴이 아니다. 

역시.. 또 한번 이렇게 블로그로 오랜 고민을 정리하다 보니 확실히 정리가 된다. 블로그를 활성화 시켜야겠다는 강박관념보다는, 블로그를 처음 운영할 때 어떤 의도로 내가 접근하고, 만들어왔는지. 무엇든지 초심이 중요한 것일까, 한번 더 나는 블로그라는 툴의 매력에 빠질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마하반야님의 말을 응용하자면)그래서 나는 블로그를 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65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랜만에 포스팅인 것 같다. 요근래 몇일간 조금 방황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특히 나의 생각에 대해, 욱하는 성격 때문에 금요일에 아버지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고, 이 일에 대해 생각해 보다 보니 내가 너무 당시의 감정에만 치우쳐 감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주말 내내, 그리고 오늘도 계속 고민하고 있다. 나의 가장 큰 문제라고 여겨왔던 것들에 대해서, 항상 업된 기분에 아주 기초적인 본능적인 것들에 자신과의 타협이 많아짐과 동시에 의지라는 공든 탑이 단 한순간에 그 타협으로 인해 흐트러지고 깨어져 버린다.  


때론 컴퓨터를 남들보다 빠르게 만지고 인터넷을 일찍 접한 것이 후회스러울 때가 바로 이런 때이다. 남들은 어찌 보면 쉽게쉽게 하고 있는 것들을 나는 다른 방향으로 인지하고 생각한다. 공부보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우선이어서 기초적인 영어조차 많이 모자르다. 국어는 물론, 원하는 답은 모두 인터넷에 있으니 마치 인터넷 치매같이 오프라인 상황에서는 바보가 되어버린다.

어제는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를 달렸다. 오고 가는 많은 자전거 탄 사람들 중에 나는 자꾸 나보다 느리지만 앞에 있는 사람들을 앞서나가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추월했다는 성취감 비슷한 것은 존재하지만, 이것은 누구를 위한 성취인가? 잘못하다 사고라도 난다면?

걸을 때도 비슷하게 사람들 평균 걸음걸이가 약 3.8km/h 인데 비해 나는 약 5km/h로 걷는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성급하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무엇에 쫓겨서 앞서나가려고만 하는 것일까.

결국 나는 기다릴 줄을 모른다. 이 말은 즉 인내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당장 눈 앞에 미래의 결과가 오지 않으면 자꾸 불안하다.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가 증폭되는 것 같다. 분명히 기초부터 차근 차근 밟아간다면 기다림이 길더라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텐데 말이다.

얼마전 5개월간 준비했던 공모전에서도 나는 차근 차근 처음 익히는 기술에 대해서 약 2개월의 공부를 거치고 2개월의 기획과 디자인을 거쳤다. 허나 개발 기간이 1개월 밖에 되지 않아서 한달 내내 조마조마 했던 기억이 난다. 분명 하루하루 꾸준히 공부와 개발을 했다면 그렇게까지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인데 나는 무엇이 그렇게 급했을까.

급한 이유는 단 하나다. 나는 그간 25년간 자기합리화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계획을 세운 것은 채 몇주가 가지 못했다. 25년간 특히 "금연" "영어공부" "다이어트" "금주" 라는 4가지 키워드는 특히 부모님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내용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를 꾸준히 실천하지 못한다. 아주 어이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이 무너진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나는 유혹에 빠져 버리고 이는 후회를 불러일으키고 스트레스가 되어 실패의 도가니 속에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분명히 답은 알고 있다.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꾸준히 실천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안된다. 나도 저 4가지의 키워드 중에 이룬 것이라곤 금연밖에 없다.

그럼 난 어떻게 금연을 했을까? 내가 생각해도 내가 금연했다는 자체가 믿어지지 않지만 지금은 금단현상도 사라졌고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금연을 결심했을 때 아마 주위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그리고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언제나 그 분명한 목표가 흡연이 생각날 때마다 나를 압도하게 만들었다. 머리속에 천사와 악마가 싸우는데 악마가 거의 듣보잡 수준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3가지 사항들도 분명한 목표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음수련이 절실하다. 매번 계속 상기시키고 있어야 한다. 나 자신과 약속을 지키고 나의 미래를 언제나 정말 뚜렷하게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성공과 관련된 대부분의 책에서는 "뚜렷한 비전과 미래"를 강조한다. 눈만 감으면 보일듯한 뚜렷한 미래 말이다. 아마 나는 그런 미래가 부족하지 않나 싶다. 단순히 물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내가 정말 인류의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 단지 잉여인력으로 살아갈 것은 아니다. 어떤 업적을 이루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것에 대한 정의가 항상 나는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부족한 것 같다. 그것도 아주 많이,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미래를 설계할 것이다. 결국 내 미래는 내 브랜드인 아이젝트와도 귀속되긴 하지만.. 보다 더 사람의 입장에서 미래를 설계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똑똑히 나 자신에게 말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하겠다. 그리고 나는 그냥 지키기만 하면 된다. 매일같이 내게 반복해서 훈련시키고, 나를 채찍질 하면 된다. 결국 나의 단점을 버리는데 당장의 답은 없다. 내가 가장 못하는 꾸준함을 기르는 훈련을 하면 된다. 다시한번 최고의 나로 도약하기 위한 그런 6월 6일이 되길 바란다. 국가유공자들의 평온을 기원하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636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나에게 무한한 행복과 감사를 가져올 것이다.

웹개발도 하고, 게임 개발도 하고, 인사총무도 하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다가 웹개발 병역특례로 자리잡은지 벌써 2년이 넘었다. 3년의 긴 병특 생활도 300일 정도 이후면 끝이 나게 된다.
금융 업계에 있어서 그런지, 경제에 대한 관념은 적은 편이지만 최근 금융권 보안 사태가 빗발치고 있고, 이에 대해서 다른 개발자들 보다 더 몸소 체험하고 있는 편이다.

IT업계에서 6년차에 접어드니 프로그래머로써 과연 나는 행복할까? 라는 답에 "행복하다." 라는 답을 내릴 수 있어 내 개인적으로는 많은 발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웹 개발, 그곳에서 나는 행복을 추구하였고, 이리 저리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어 지금의 위치에 올 수 있었다.

항상 효율성과 중간을 추구해 오는 나로써는, 사실 프로그래머로써 하나의 알고리즘에 있어 물론 타 프로그래머들 처럼 보다 더 효율적이고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추구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개발자들과는 다르게 웹 프로그래머이다보니 보다 더 BLS에 민감하고 빠르게 개발할 수 있으면서도 최적화된, 그리고 최적의 비용이 들 수 있는 개발 환경을 추구하게 된다.

이러한 생활속에 내가 말하고 싶은 행복은 다른게 아니라 나의 "시간" 활용이다. 오랜 방황의 시간을 통해 나는 웹개발자라는 길을 선택하고, 제 2의 IT 붐이 일어나는 이 시점에서 지금이 나는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고 무엇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행복하다.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왜냐? 나만의 시간에 나는 또 웹개발을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남은 병특 기간동안 내가 조금씩 개발할 것을 구상하고 있다. 병특이 끝나면 나는 물론 대학을 3년 더 다녀야 하긴 하지만, 자유스러워진 몸에 아마 최소한 1인 기업으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일전에 나는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실력"이란 자체는 그 어떠한 열정이나 경영력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크게 느꼈다. 게임개발에 대해 어떠한 기술도 없이 도전한 나는 그야말로 초등학생이 고등학생을 모아서 대학생들을 위한 교재를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말이다.

그래도 2008년 이후 3년여동안 나는 최소한 어떤 아이템에 있어서 어떤 시스템을 구현해야 하고 어떻게 개발하면 아이템이 현실화 될 것인지에 대해 이해하고 실제로 이번 다니길 프로젝트를 통해 실현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퇴근후 일찍 자면 이 새벽 시간이 모두 나의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나의 미래를 위한 투자의 시간이다.

나의 삶은 나의 것

나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한 유대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곳에서 계속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은 비극적일지라도 나는 죽지도 않았고 살아있기에 행복하다고 믿었고, 그것이 나를 그곳에서 살아남게 해준 강한 정신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최악이라던 그 수용소에서 조차 행복을 느낀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나 우울, 짜증 같은 나쁜 감정들에 대해서 내가 만약 감사하다 혹은 즐겁다,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생각이 감정을 지배할 수 있다면, 그만큼 강한 정신력도 없을 것이다.

아니면 한번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병특이라서 그런지 자주 군대에 간 친구들을 생각하곤 한다. 그러면 내가 밭는 혜택들에 대해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느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허나 내가 화를 웃음으로 바꾸는 것이 미래를 생각했을 때, 나를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라고 느끼는 순간 마치 제 2의 인생이 시작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보기도 싫던 사장에게 감사하게 되었고, 매번 반복되던 회사 일 하나 하나에도 나는 감사하게 되었다.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지금 환경에서도 잠시 생각의 전환으로 스스로가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다. 행복은 우리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고, 그 생각은 물론 본능적인 것이 크긴 하지만 우리는 만들어 낼 수 있다. 지금 기분이 안좋다면, 지금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 딱 한번만 다시 돌아보고 바꿀 수 있도록 해보자. "행복하다" 고 느끼면 최고겠지만, 그게 안된다면 감정을 없애는 노력을 해보자. 그게 진정 자신이 만들어 가는 삶이고, 느낌이 아닐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626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4월은 극한 추위가 지나고 따뜻한 날씨가 찾아오고 있다. 이는 마치 나의 상태와도 비슷하긴 한데, 2월 3월 한참 플랙스 개발을 하다가 이제 끝나고 마음에 여유도 찾아왔고, 회사에서도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지금은 마치 어느 따뜻한 봄날처럼 한가하기만 하다. 


그렇게 한가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그간 내가 놓치고 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1월에 한달여동안 진행했던 다이어트가 그야말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나름대로 고생해서 식이요법을 통해 8kg을 감량하긴 했는데 도로 6kg가 쪄버렸으니, 누구의 탓으로 돌릴까? 

 


내가 밤샘개발을 하면서 입이 심심해 처음에는 원두커피를 먹었는데 계속 단맛이 땡기더라. 그래서 거의 3주정도는 매일같이 초콜릿을 섭취한 것 같다. 사실 초콜릿이 적당량을 섭취하면 지방분해에 좋고 두뇌회전에 도움을 준다고는 한다. 하지만 단맛이 식욕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 몸, 아니 내 몸은 특히 더 그런데 이렇게 한번 풀어지게 되면 한도 끝도 없다. 


허리띠가 풀리게 되면 "폭식"을 일삼는데, 이것이 살이 찌는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결정적인 요소가 아닐까? 그래서 이번주부터는 일명 "미친걷기" 라는 운동을 시작했다. 하루 1끼만 굶고 10km걷는 것이다. 미친걷기는 단시간에 빠른 감량이 가능한 것은 이미 예전에 체험해서 알고 있다. 중요한건 이렇게 우선 격하게 살을 빼 두고 나서부터의 실천이 중요하다. 어차피 사람이 굶고는 살지 못한다. 하지만, 일단 몸무게를 어느정도까지 줄여놓고 어느 적정선을 유지할 수 있다면, 힘들게 살을 빼는 것 보다는 덜 힘들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습관이다. 마치 오늘 나가서 걷지 않으면 예전의 몸무게가 돌아올 것 같다는 것처럼 생각하니 계속 걷게 된다. 좋은 습관은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 일으키는데, 나의 경우는 이렇게 걷다 보니 체력이 예전처럼 돌아오는 것 같더라. 5시간을 자도 피곤하지가 않은 것은 그 만큼 체력이 좋아졌다는 증거가 아닐까? 게다가 전과는 다른 결단력과 집중력도 생기는 것 같다.


마음가짐 또한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데, 분명한건 다이어트 기간에 “슬럼프”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꾸준히 운동을 한다 한들 100kg을 들고 운동하는 것과 90kg을 들고 운동하는 것은 그만큼 기초대사량의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의미하니깐. 


어느정도 몸을 다이어트 궤도에 올려놓으면 그 다음으로 실천해야 하는 일은 ‘근력량 키우기’ 다. 근육량은 우리 몸이 필요한 기초대사량을 설정하는데 가장 큰 존재이다. 기초대사량이 올라간다는 것은 그 만큼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살이 빠진다는 얘기고, 특히 이러한 “걷기” 를 할 때 한 걸음 걷는 것이 기초대사량이 100일때랑 200일 때 100만큼의 칼로리 차이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이나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걷기 운동의 가장 큰 효과는 생각을 다이어트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 다이어트라니?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우리는 정말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우리 뇌에 한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이 많으면 많을 수록 피로해지고 일을 제때제때 하기가 힘들어진다. (스님들은 어쩌면 그래서 무념무상을 연마하시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특히 수 없이 많은 생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주의해야 한다. 스트레스는 정말 만병의 근원이자 살이 찌는 가장 큰 주범이다. 요즘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경향이 있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언가 먹게 된다. 나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머리가 좀 안돌아가는(생각 정리가 잘 안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초콜릿을 섭취하곤 하였다. 머리좀 식힌다고 집에서 영화좀 보려면 꼭 프린글스 한통과 500cc 아사히 맥주 두 캔이 필요했다. 숨만 쉬어도 살이 찐다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의 스트레스 해소 습관을 생각해보니 이렇더라. 무언가 꼭 먹게 되었다.


걷기는 이러한 잡념을 없애주는 엄청난 효과를 나타낸다. 걷다 보면 별별 생각이 다 나게 마련인데, 일단 걷다 보면 힘들어서 음악을 듣던 무언가에 집중을 하게 된다. 물론, 내가 걷는 방향에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잡다한 생각보다는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아주 본능적인 생각이 이어지고 그렇게 되면 떠오르려던 잡념들이 본능적인 생각에 막혀 사라지게 된다.


방법적인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매번 걸을 때마다 컨셉을 정해서 걷는다. “오늘은 과연 모듈화와 단순 노가다 작업중 어떤 것이 나을 것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자.” 라는 주제를 정하고 걷는 동안 계속 생각을 해보게 된다. 보통 출근길 1시간을 걷곤 하는데, 1시간동안 이러한 주제로 생각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말 그대로 질릴 때까지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어떻게든 결론을 내리던가, 아니면 포기하게 된다. 결과가 나온다는 것, 이러한 생각의 꼬투리를 잡고 질질 늘어지는 것보다 얼마나 효과적인가? 


걷기는 우리가 가장 쉽고 현대인에게 가장 잘 맞는 운동법이라고 생각된다. 뛰는 것보다, 자전거 타는 것보다 부담이 훨씬 덜하고 언제 어디서든 운동을 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한 투자, 걷기. 어쩌면 걷기는 지금 당신이 알고는 있지만 고치지 못하는 나쁜 습관을 해결해 줄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62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최근 나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어느정도 끝내고, 이제는 내가 생각한 길로 나아가는 로드맵도 구체화 시키고, 그 전에 더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나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있다.


요즘엔 많은 추억들이 내 손에 잡힌다. 어제는 책상 정리를 하다가 번득 고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사용했던 다이어리들이 나왔다. 2007년 한 해동안 나는 3번이나 프랭클린 플래너를 바꿨다. 2005년 수험시절에 내게 큰 힘을 안겨주었던 프랭클린 플래너 주니어를 생각하며 당시에는 아마 프랭클린 플래너랑 함께 하면 뭐든지 성공할 것 처럼 보였던 것 같다. 물론, 결론적으로는 그러한 과정들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플래너 한 세트가 거진 6~10만원 정도니깐 30만원 정도를 날린 셈이다. 하루 하루 쓰자고 마음먹은 것들은 작심 3일이 되기 일수였다. 그 만큼 나는 마음도 가다듬어지지 않았고 "마음가는대로" 사는 놈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몇 번의 낭비 끝에 나는 이제는 다이어리를 꼭 프랭클린 플래너를 고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원노트와 에버노트에서 심한 고민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 선택을 위한 일련의 고민 과정이 내게는 사실 가치있는 선택의 행동인 것이다. 20살부터 단 5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는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처세술에 대해 익혔으며 업무를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지, 눈치를 안 보고 당당하게 살기 위한 방법이라든가 회사를 다니면서 개인 시간을 만드는 방법, 일을 잘 처리하는 방법 등에 대해 실제 실무 생활은 2년이지만 그 기간 동안은 정말 몸소 깨우칠 수 있었다.

가장 위에 있다가 가장 아래서 시작하는 마음은 정말 힘든 것 같다. PM을 하던 시절의 내 작업물들을 보면 내가 얼마나 겉멋에 찌들어 있었는 지 대충 짐작이 간다. 겉멋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바로 실속이 없고 겉만 멋들어진다는 것이다. 덕분에 실제로 실력이 없어도 나는 "디자인" 과 형식에 주목한 것이다. 이는 당장에는 좋을 수 있을지 몰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책임질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떠맏게 된다.

이는 모든 것에 통용된다. 최근 얼마전에 아이디어는 참 많고 이를 말과 PT로 잘 포장하는 데는 엄청난 소질이 있는데 정작 지원을 받은 금액을 유흥에 흥청망청 써서 망했다가 이제 다시 일어나려는 20대 벤처인을 본 적이 있다. 그런 것이 마음 관리가 잘 안되서 그런 것 같다. 사실 20대들은 "고생"이란 걸 잘 모르기 때문에 나처럼 아무리 힘들게 번 돈이라도 흥청망청 써버릴 때가 많다. 뒤늦어 후회하고, 후회하고 해서 그게 쌓이면 낭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되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마 20대 중반이 된 내가 그런 생각이 더 드는 것 같다. 이제는, 껍데기라는 것은 전혀 쓸모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이번에 전직을 하면서 내가 나 자신을 가장 크게 어필한 것은 웹 개발이라면 뭐든지 다 할 자신이 있다는 것이었고, 내가 전직하는 이유도 물론 중견업체에서의 경험도 중요했지만 작은 회사에 있다 보니 나 자신이 너무 나태해지는 것 같았고, 좀더 큰 곳에서 나의 실력을 인정받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전직이라는 것은 내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결정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간 시간을 버려버리고 모든 것을 잃고 군대로 끌려갈 수도 있었다. 생에 그처럼 극도로 하루하루 긴장속에 산 적도 없다. 출근해서 의자에 앉는 자체가 바늘방석에 앉는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병특도 2011년만 지나면 끝난다. 벌써 2년을 했다니.. 시간도 참 빠르지만 무엇보다 후회되는 것은 내가 그 동안 무엇을 이루었냐는 점이다. 솔직히 전직말고 한 것이 없다. 하지만 난 전직을 통해 자신감을 얻었고, 시간을 얻었다.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개인시간을 만들 수 있다." 라는 엄청난 것을 얻었다. 이렇게 마련된 하루 4~5시간 남짓의 무려 1/4나 되는 시간을 나는 자기계발에 할애할 수 있다. 심지어, 회사에서도 일이 없으면 자기계발을 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웹 개발에 한정된 것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내가 병특을 온 가장 큰 목적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지난 2009-2010년을 헛되게 보냈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나 나름대로는 개발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었고 웹 개발의 전반적인 업무를 알게 되었고 작은 회사에 있다 보니 온갖 기술을 접할 수도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때문에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은 모두 잘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다. 그동안 내 발목을 잡고 있던 영어도 병특 기간을 나와 함께 했던 뮤즈의 태생인 영국이 너무나도 좋아지면서 영국 드라마를 보며 UK발음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2011년에는 좀 더 공부를 해서 영국문화원에 등록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RIA와 UX, SNS 등의 키워드를 잡고 웹 개발에 대해 나아가고자 하였고 RIA를 좀 더 이해하고자 ACE라는 자격증 목표도 세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밝히기는 좀 그렇지만 더 큰 목표가 하나 있다. 2년을 준비해도 될까 말까한 일이지만 일단은 누구도 모르게 준비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키워야 할 것이다. 떠벌이가 아니고 조용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 가는 그런 것이다.


세계 최고의 마음가짐만 있다면, 이 세상에 못할 것이란 없다. 뚜렷한 비전과 긍정적 마인드, 그리고 철저한 자기관리가 있으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최고를 위해 다다를 2011년을 보내고, 2010년을 잘 정리하며 마무리 하도록 하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60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벌써 2010년도 한달하고도 절반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그간 참 나는 뭘 하고 지낸가 싶어서 블로그의 글을 한번 쭉 돌이켜 봤는데, 글쎄 벌써 이 블로그도 운영한지가 3년이 다된 것이 아닌가. 내년이면 4살이 되는 블로그, 참 너에 대한 애정(?)이 식을 수록 나 자신에 대한 마인드컨트롤도 나태해 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2008년 8월 22일, 내가 시작한 회사가 최종적으로 프로젝트를 정리하는 판단을 내렸을 때, 물론 아직도 회사는 운영되고 있지만 어쩌면 2008년은 많은 고민을 하던 한 해가 아닌가 싶다. 2006년이 정말 철없이 그저 이것 저것 해봤던 때라면 2007년은 멋모르고 사업을 시작했던 때, 2008년은 인간관계, 자기개발 등 그야말로 많은 분야에 있어서 고찰과 잘못된 부분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떄가 아닌가 싶다.


2008년 3월에 결국 PM자리를 사장님께 내주고 나는 인사총무팀으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그 때는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라고 후회를 하면서 개발은 손을 아에 떼버리고 인사총무 일만 했었는데 지금와서 돌이켜 보면 그 때에 회사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었고 내가 전역해서 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 때 조금 공부해 둔 자바 언어가 지금은 내 주요 기술로 자리잡고 말이다.


결국, 과거를 생각해 보면 사실 그 당시에는 후회스럽다고 생각한 일들도 생각해 보면 그런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스킬(skill)적인 부분에서 볼 때에 사실 자바라는 언어보다는 난 그저 html과 자바스크립트, 웹디자인과 웹기획 정도만 좋아했을 뿐이지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는 아주 초보적인 것에 그쳤다. 그나마 웹은 php랑 mysql을 연동해서 조금 굴릴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를 보면 자바와 이클립스를 통해서 서버구축에서 DB구축 및 구현까지, 물론 아직까지 내가 구축해 본 사이트는 소규모 사이트밖에 없지만 참으로 SM일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실력을 닦을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싶다. 덕분에 웹개발이라는 분야를 항상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웹 개발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병특 생활을 보내고 있고, 그러한 서비스들이 우리 주위에서 널리 퍼지고 있다. 그야말로 기회의 한 줄기를 잡을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이다.


물론 지금 나는 많이 나태해져 있기는 하다. 예전에 비해 실력은 늘었을 지 몰라도 너무 업무에만 치중하다 보니 나 자신에 대해 관리하고 신경쓸 시간이 많이 없었다는 것이 되려 내게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따라서 앞으로는 로드맵에 근간하여 내가 해야 하고 관리해야 할 것들을 철저하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흠.. 이 오밤중에 헛소리란 언제나 즐겁구나.. 그나저나 요즘 왜이리 블로그에 쓰는 말이 딱딱 끊어지는지 몰라.. 전문블로그 를 너무 외치고 다녀서 그런가 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596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회사를 옮기고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는 단지 웹을 안다는 이유로, jsp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맡게 된 프로젝트였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금융업계에서 사용되는 active-x와 서버 단의 통신 모듈을 개발하는데 parameters를 받고 이에 대해 정의된 규칙대로 처리하는 것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말은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최초 단순히 jsp를 통해 xml을 response받고, 이를 jsp내부에서 Map을 통해 처리하도록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개발을 다 해놓으니 갑자기 JSON을 기본으로 바뀌질않나, jsp코드는 사용도 못하게 바뀌어 버리고 회사 내에서 개발한 MVC 저작 스튜디오를 통해 해당 형식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회사서 개발한 MVC툴은 쿼리를 등록하고 response값들을 매칭시켜 놓으면 내가 받는 parameters값에 따라 자동으로 매칭시키고, 이에 대한 쿼리를 in/out처리를 객체를 통해 처리하도록 되어 있는데 사실 툴 사용법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금방 끝낼 수 있는 일이지만 최초부터 이 프로젝트는 내게 화면 설계 조차 보여주지 않았고, ERD같은 것은 아주 향후에나 나오게 되었다. 디비도 작업도 사용되는 모듈도 BLS도 최초부터 다 분석해서 단순히 by-pass가 아닌 쿼리를 구현하다 보니 BLS도 전부 내가 설계할 수 밖에 없었고 단순 쿼리부터 해서 로직까지.. 원래 혼자서 웹 단을 도맡는 작업을 많이 해오긴 했지만 이처럼 산으로 흘러가는 프로젝트도 참 오랜만인 것 같았다. 게다가 같이 작업하는 작업자는 얼마나 스케줄을 쪼아대는지, 내가 경력직이 아니었다면 상당히 쉽게 질려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좀 너무하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8월 입사 후 근 3개월간 이렇게 진행한 프로젝트는 어제 일단락 되었고, 나는 조용히 기쁨을 만끽했다. 물론 어렵긴 했지만 본래 프로젝트라는 게 전부 제대로된 프로젝트라는 보장이 없지 않는가. 더군다나 나는 어찌 보면 행운아일 수도 있다. 입사하고 이렇게 빡센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되면 앞으로 회사생활을 하는데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쌓인 피로하며, 10/31일에 놓친 토익 시험 하며 그동안 못들은 굿모닝 팝스와 토익 공부, 회사 출퇴근 걷기, 점심시간 단어 외우기, 일기, 독서 등.. 모든 것을 미루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별 수 없이 말이다. 보통 나 홀로 작업을 해오던 나인데, 갑자기 약간은 막장성이 있는 프로젝트에서 팀 업무를 하게 되니 적응이 전혀 안되더라. 또한, 내가 작업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작업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계속되는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고, 그러한 상황이 스트레스로 이어져 살이 찌게되고, 잠만 많아지고 마음은 흐트러지고 말았다.


특히 가장 아쉬운 것은 블로그 관리를 꾸준히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살아있는 블로그가 아닌 죽은 블로그를 만들고 말았으니 말 다했지 말이다. 그나마 그 기간동안 자기브랜드를 구축한 것은 꽤 성공적인 일이지만, 한치 앞도 바라볼 수 없는 프로젝트에서 내가 느낀 것은 그야말로 심한 좌절이 많다.


여튼 다시 마음을 가다듬으며 UX와 웹, IT관련된 서적을 구입했다. 얼마 전 모 블로그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글이 있었는데, 책을 읽으면 남들이 살아가면서 몸소 경험해야 하는 것들을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다더라. 독서 만큼 시간이 적게 들면서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한다. 이제 어디서든 그냥 스마트폰만 끄적이는 습관을 없애고 독서를 주로 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 안에 목표한 토익 성적 올리는 것에 대해서 약속을 지키려면 이번 프로젝트처럼 진행해야 한다. 집에 와서 적은 시간에도 공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59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kooh.tistory.com/ BlogIcon 2010/11/07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전히 바쁘게 사시는 군요.^^

    저도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야 할 텐데 말이죠..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독서 만큼 시간이 적게 들면서 간접경험을 하는 것도 드물다' 저도 동감합니다.

    저는 중학생 때 그 간접경험으로 인해 인생이 통째로 봐뀌었지요.

    판타지 책 이었지만...

    작가가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를 보고 있으면 이것 또한 도움이 되더군요.


최근에 자신의 문제점에 대해 깊히 생각하고 발전해 가야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결국 답을 내릴 있었다. 답이라는 것은 결국, 2년전에 내가 내린 답이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마인드컨트롤" 조금 심화시켜 생각한 결과, "화에 대한 억제" 라는 답을 내릴 있었다. 2008년에 생각한 이러한 개념을 이제와서 나에게 맞게 구체화 시키고 있다. .. 그간 나는 하고 지낸 것인지. 어쩌면 마음을 손에서 놓은 삶을 가는 대로만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나 최근 회사 이직등등 일련의 여러 사건들이 내게 "스트레스" 다가와서 당장 앞의 해소거리(술이나 고기 같은.) 찾다가 그러한 것들이 나도모르게 몸에 익숙하게 습관처럼 다가오게 되었다는 것을 무시하고 지냈던 것이다.

"화"라는 것의 종류.

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답은 간단하다. 화가 나는 , 욱하는 , 열받는 , 성질 돋구는 등등 살다보면 이런 일은 많다. 이런 상황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들다. 나는 보통 저런 상황이 되면 얼굴에 표가 나는 편이며,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기 힘들다. 최대한 억제한다 치더라도 뒤에 가서는 뒷담화를 일삼는다. 특히 나도 모르게 (심하지는 않지만) 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상황을 나도 내가 그랬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특히 술을 먹다가 화내는 경우는 정말 나는 깽판을 쳤을 지도 모르는데 다음날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자신이 이렇게 무섭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위키백과에서는 화를 이렇게 정의한다.

3. 못마땅하고 성난 기분. 어원 한자  활활 타는 '불'을 사람의 감정에 비유하여 생긴 말. • 화를 벌컥내다. •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 화를 다스릴줄 알아야 비로소 어진 사람이 된다. 비슷한 말 성, 불화, 불만 파생어 화내다

난 참 위키백과에서 저런 말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화를 다스릴줄 알아야 비로소 어진 사람이 된다." 같은 말들을 하고 있는데, 맞는 말이다. 화라는 것이 단순히 성질난 것에서 벗어나 평정심에 살짝이라도 흐트러짐을 가하면 그것이 바로 화가 아닐까? 평정심이라는 덩어리가 있다고 치면, 평정심이 흐트러짐은 곧 하나의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떨어져 나간 조각은 화의 정도에 따라 멀리 멀리 떨어져 나가버린다. 이를 다시 주어담아야만 평정심이 온전한 형태로 유지가 되는데, 다시 주어담는데에 대한 시간은 똑같이 화의 정도에 따라 비례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평정심 조각을 주어 담는다는 의미.

예전 중학교 시절부터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때 서울로 전학을 오게 되면서 자연스래 헤어지게 되었고, 대학에 진학해서야 겨우 연락이 되서 다시 만나보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사업 이외에 시간 투자를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민감해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나를 예전의 그러한 친구로 생각하고 거의 매일같이 연락을 해서 놀자고 한 것이다. 가까운 곳도 아닌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4호선 끝자락에서 말이다. 결국 나는 그 즉시 연락처에서 삭제해 버리고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4년이 지났다. 또 한 예로는 고등학교 때 참 어리게 산다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라기 보다는 그냥 같은 학교 아이일 뿐이었지만, 여하튼 그 친구에 대한 인상은 참 왜 저런 행동을 하며 저러고 다니는 것이었지만, 그때보다 시간이 지나 지금 사회에 대한, 혹은 대학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그 친구를 보면 참으로 많은 나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뭐 극단적인 상황은 위의 나의 사례에서는 없지만, 전자의 경우는 내가 대화한번 시도하지 않고 극단적인 조취를 취한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편견에 의해 흐트러진 평정심 조각이다. 전자는 잦은 압박에 의한 평정심의 흐트러짐 정도라 보고 싶다. 결국 '욱'해서 행한 행동이고, 어쩌면 돌이키기 힘든 상황까지 가지고 간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관심은 없으나 마음 한편으로는 연락하기가 두렵고 또 같은 상황이 반복될까 두렵다. 예전 사업을 하던 당시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곳 저곳에서 듣던 때에, 내 나름대로 판단한 일종의 "문제아" 라는 사람이 후에 큰 문제를 일으켰을 때, 아무리 그 사람과 친했더라도 지금까지도 그러한 감정이 남아있다 보니 쉽게 연락을 취한다거나, 친한 행동을 하는 것이 힘들다. 사실은 참으로 친했던 존재였더라도 말이다. 물론 편견에서 비롯된 이런 사례들이긴 하지만, 사실상 나의 평정심에 흐트러짐을 주었다는 자체가 나를 화나게 한 것이고, 이를 마무리 하기에는 아직까지는 그 불화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도 불화는 꺼지지 않고, 평정심 조각도 제 자리를 못찾는 것이 아닌가.

나에 대한 화.

가끔도 아니고 매우 자주, 나는 나 자신을 돌이켜 보면 화가 날 때가 많다. 나는 왜 이렇게 살지? 이 좋은 기회를 나는 왜 그냥 놓쳐버린 것이지? 이것들 역시 돌이켜보면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해서 그랬고, 화와 욱함을 제때 바로잡지 못해서 그렇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내가 또 한번 화를 내게 되면 또 다시 나는 흐트러진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또한 돌이켜 보면 후회가 남을 행동이 되고 ... 이러한 사이클이 무한 반복이 되면 진짜 인생의 중요할 때에 돌이켜 보면 나의 이러한 태도에 정말 자살충동까지 일으킬 지도 모른다.  바로잡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단지 한숨만 내뱉지 말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매로 다스리면 면역이 생기고 화만 돋굴 뿐이지만, 쓰담으로 다스리면 순해지고 강해진다는 것이다. 남보다 소중한 것이 나 자신이고, 남에 대한 화를 생각하기 전에 나에 대한 화를 억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결론적으로 마인드컨트롤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인드 컨트롤만 된다면야, 자신이 설계한 것을 굳은 의지로 지켜낼 수 있다. 그것이야 말로 성공의 지름길이고 참 이러한 행동이 화와 평정심과 연관되어 있다니, 인생 참 아이러니 하지만 우리는 지킬 수 밖에 없다. 약육강식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내세우고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화를 다스리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미친듯한 열정을 부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 그게 이 시대의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라고 깊이 생각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TAG 억제, 평정심,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59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0년도 어느새 거진 마무리 되는 단계에 다다렀다. 벌써 10월, 83%나 지나간 이 시점에서 나는 잠깐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연초에 했던 다짐들이 얼마나 지켜졌나, 그리고 앞으로 남은 시간에 있어서 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잠시 리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짧은 20대 초반이었다. 학교따위는 별로 중요치 않게 생각했기에 20살부터 사업을 하기 위해 열심히 달렸지만 3년간의 나의 고생은 결론적으로는 실패, 사람을 수 없이 얻고 잃고를 반복하고 많은 투자금을 탕진하면서 나는 가끔은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한 감을, 가끔은 상실감을 느끼면서, 무엇보다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나도 모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것이 비단 기술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게임산업이었지만 IT산업 전반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었고, 군 문제의 영향으로 병역특례 회사에 입사하면서 또한 번의 삶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아니, 뭐 꼭 전환기라 볼 것은 없지만, 최소한의 나의 "기술"이라 치부하고 싶었던 "웹" 기술에 있어서 나의 사회에 비춰진 객관적인 척도의 기준이 되었다. 확실히, 이러한 기회는 나를 좀 더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고, 마침 입사했던 회사가 IT업종에 마구 인재를 파견하는 회사인지라 전반적인 IT업종에 대한 동향이라든가, 이런 것에 대한 파악이 손쉬웠고 나의 진로를 찾는 데에 좀 더 도움이 된 것 같았다.


결국, 큰 물과 큰 업종에서 놀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고, 무엇보다 "중견기업" 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작은 회사에 있다 보니 사람에 신경쓰다 보면 결론적으로 실력은 고만고만 하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정말 극한적으로 사람을 다루다 보니(기존에도 많이 다뤘지만) 그 만큼 사람을 다루는 실력이 늘어났다는 생각도 있지만 말이다.


결국 친구의 소개를 통해 옮기게 된 IT금융 중견업체. 이곳에도 두달 정도 있다 보니 확실히 알 수 있는 점은 "돈"이란 것은 "돈"을 다루는 곳에서 돌게 된다는 점(결국 금융업계), 그리고 중견 업체에서는 사람을 다루는 것 보다는 일 우선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확실한 보상" 이 결국 돈과 연결된다는 것. 그 만큼 중소기업만큼 작은 것에서 눈에 안 띈다는 단점도 있긴 하다만.


전반적으론 대 만족이지만, 사람은 원래 눈이 계속 높아지는 법이다. 결국 나는 이 회사에서도 불만은 생기긴 했다. 하지만, 회사 자체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는 사람에 대한 불만. 그것은 결국 계속 풀어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업무를 이해하고 나서는 좀 더 나의 고정적인 시간을 만들 수 있다고도 생각되고 말이다.


여하튼 연봉은 2.5배나 뛰어버리고, 야근 수당도 나오고. 집에서 20분 거리에.. 뭐 엄청나게 좋다만, 어쨋든 회사는 회사고 나는 이제 1년 조금 넘게 남은 병특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부로 500일 남았구나.


병특을 2/3이나 지나갔는데 지금 내게 남은 것은 단 하나. "전직" 이라는 것을 통해 좋아진 환경 뿐이다. 내 스스로 저축도 제대로 못했고, 특히 이룬 것이 하나도 없는데 그것이 가장 큰 나의 문제점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남은 2달 반정도의 2010년, 나는 단 두 가지를 이루려고 한다. "토익"과 "다이어트". 특히, 토익은 자투리 시간을 전부 공부에 할애할 수 있는 공부에 대한 습관을 기르는 데에 무한한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되며, 다이어트는 나의 건강을 위해서.. 여튼 둘 다 내가 가장 크게 지키지 못한 습관들 중 BEST이고, 이를 이룰 수 있다면 인생의 많은 부분을 성공시킬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 믿기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병특 말년은 음.. 편입 영어와 토플에 집중을 하려 한다. MBA를 목표로 하는 데 있어 영어와 국내 학벌(사실 학벌이라기 보다는 학교에 따른 학생에 대한 지원이랄까.)은 중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2011년 부터는 이 두 가지에 집중하고 웹에 있어서 나의 입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아이디어로만 썩혀 왔던 것들을 하나 둘 씩 만들어 나가고 싶다.


그렇게 또 2011년을 보내다 보면 2012년이 올 꺼고, 전역일이 올 것이다.. 정말 현역인지라 길고 긴 시간들이지만, 무언가 이룰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기회인가.


여하튼 선택과 집중에 큰 비중을 두고, 우선은 너무 성공만 바라지 말고 차근 차근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590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Toby 2010/10/19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병특하던 때 생각 나네요 ㅎㅎ

    조급하지 않고 늘 현실에 충실하면 좋은 기회는 많이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


정보올림피아드, 들어는 봤는가? 수학,과학,물리 등 올림피아드의 종류는 많은데 여기서 컴퓨터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보올림피아드라는 것이 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84년도에 당시 전국 PC경진대회라 이름붙혀진 바로 그것. 전국의 컴퓨터 영재들이 모여서 문제를 최단시간에 효율적인 알고리즘을 사용하여 만드는 바로 그것. 한국 정보올림피아드.


이런말 하기 뭐하지만 나는 원체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만져왔던지라 수재니 영재니 이런 소리를 좀 들어왔다. 사실 지금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다만 다른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컴퓨터를 조금 더 잘 다뤄서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상당히 자극(?) 적인 이 책은 내가 가장 처음 본 컴퓨터 책이다. 94년 당시 내 나이 7살, 초등학교도 가기 전에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있었고 아마도 아버지께서 직장을 다니며 사용하시려고 구입하신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에는 도스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과 음 윈도우 3.0에 대한 내용이 있었던가?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어쨌든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정말 컴퓨터가 좋았고 그렇게 운영체제에 대해 전반적인 내용을 알아가고 그러다가 PC통신을 만났다. PC통신에서 인터넷을 알게 되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HTML과 자바스크립트를 다루면서 컴퓨터와 만남은 시작되었다.


포토샵과 나모 웹에디터 같은 것이 내겐 너무나도 친숙했었고 웹디자인이 너무 좋았다. 컴퓨터 자체가 너무 좋았는데 다양한 소프트웨어와 컴퓨터만 가지고 있으면 내가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 그리고 무엇이든지 빠르게 된다는 점. 너무나도 내겐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그럼 왜 내가 이런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는가? 나는 사실 안산에서 태어났고 그근방에서 자라왔다. 내 어렸을 때 가장 큰 변화는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의 전학이었는데 그 전까지는 아버지 사업도 어려웠고 집안도 어려웠지만 가진 것 없어도 컴퓨터가 있으니깐 행복하게 살았다. 물론, 컴퓨터 뿐만 아니라 가족과도, 그리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지냈지만 내게 가장 큰 친구는 역시 컴퓨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다가 전학간 서울, 커다란 건물들이 불쑥 나타나자 나는 하늘을 쳐다보느라 목이 아펐다. 할머니 댁이 아니면 서울에 거의 안갔는데,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고 게다가 이사를 간 곳이 주상복합이라 상당히 높았다. 맨날 2층,3층에 살다가 갑자기 40층이나 되는 건물로 가게 되니깐 당연히 적응이 안될 만 했다.


그 외에도 남중을 처음 다니게 되거나 서울 날나리들이 고향과는 다르다는 점, 뭐 많은 부분이 내게는 변화를 요하는 부분이었는데, 그 중에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된 가장 큰 변화란 바로 정보올림피아드를 알게 된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여전히 컴퓨터만 좋아하던 나는 대학에 대해 보다 일찍 생각하고 계셨던 부모님을 통해 "너는 컴퓨터를 잘 하니 정보올림피아드라는 것을 준비해 봐라." 라는 얘기를 들었다. 컴퓨터만 잘해서 대학을 간다? 정말 듣던 중 가장 반가운 소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것도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니 말이다.


사실 정올에 처음 나가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PC경진대회에 나가본 경험은 있기 때문. 하지만 지금의 정보처리기능사 정도의 필기 문제에 해당하는 당시 상황에서 나는 그러한 이론을 잘 몰랐기 때문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 물론 나가보기는 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여하튼 부모님의 수소문으로 나는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월드 정보올림피아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 접하는 C언어를 터보C로 돌리면서 한달여 간은 코딩 감각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내 의지라기 보다는 학원에서 하라고 해서 한 것이 크지만 말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다가선 정보올림피아드(이하 정올). 정올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나는 처음에는 정말 의욕적으로 다가섰다. 컴퓨터 잘하니깐 이런 문제는 잘 풀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 멋모르고 알고리즘을 배워가면서 문제에 적용하려고 애를 썼다.


허나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심지어 나는 학원에서 해외로 캠프를 떠나길래 호주 연수를 1개월 동안 다녀오기도 했는데 실력은 전혀 늘지 않았다. 왜일까? 그건 바로 컴퓨터 자체만으로 접근한 나의 사고의 문제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4회 한국 정보올림피아드





결국 정올은 이거다. 수학올림피아드의 문제를 본 적이 있는가? 수학올림피아드의 문제는 수학 문제를 공식 등을 통해 풀어서 답을 도출한다. 정올? 정올의 문제는 역시 문제 그 자체이다. 이 문제는 실상에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수학 문제는 문제를 숫자로 유추하고 공식으로 환산할 뿐이다. 정올은 문제를 컴퓨터라는 장치, 뭐 좀더 깊히 말하자면 c나 c++이 지원하는 각종 라이브러리의 사용, 그리고 컴파일러와 cpu의 연산 속도 등을 이용하여 문제를 풀 뿐이다. 수학에서의 공식에 해당되는 것이 이러한 프로그램 언어의 특징을 살리는 것이다.


그럼 알고리즘 개념은 왜 들어가 있는가? 이것 역시 프로그램 언어의 특성을 잘 살리기 위해 정의된 것들이다. 우리는 스텍과 큐 등을 배우면서 배열 등에 대해 배우게 된다. back-tracking을 배우면서, divide and conquer를 배우면서 우리는 함수와 재귀호출에 대해 배운다. 트리검색, 분할정복, 그래프, DFS, BFS등등 많은 정올을 위한 알고리즘이 프로그래밍 언어의 특성과 관계가 있다.


결국 정올을 접근하려면 우선 프로그램 언어의 특징을 알고 이를 문제에 어떻게 접목시키는가가 중요한데 나는 이를 간과하고 그저 머리속에는 포문을 어떻게 돌리고 수학적으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 등.. 그리고 기존에 배운 알고리즘을 어떻게 활용할까. 이런 방면으로 접근하다 보니 틀렸다는 것이다. 정올 문제는 프로그램 언어의 특성을 활용해서 풀라고 만들었지 말이다.


어쨌든 나는 결론적으로 정올을 통해 대학을 진학하겠다는 꿈은 고2때 버려야만 했다. 무려 4년을 준비했지만 결과는 그저 프로그램 언어에 대한 이해 정도? 알고리즘도 거의 암기식으로 한 나에게는 심지어 자료구조의 이해도 없었다. 물론 개발자가 된 지금에야 이해하고 있지만 말이다.


방향을 잘못 접근한다는 것은 정말로 후회스러운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결국 수능공부를 통해 대학에 진학했지만 그 잠깐의 1년이란 기간은 내게 커다란 여파를 가져왔다. 아니, 웹 디자인을 못하게 된 것이 5년이 지났으니깐. C언어는 바뀌지 않아도 웹은 무지막지하게 변했다. 정말로 아직도 따라집지 못할 정도로 변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난 항상 생각하곤 한다. 나의 삶은 올바른 방향을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을까? 비록 내가 벤처를 해서 3년을 날려먹었다 쳐도, 지금 병특 기간동안 또 3년을 날린다 쳐도, 그런 것들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걸어가고 뛰어가고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일은 회사 휴가인데 한번쯤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잘 돌이켜 보고 옳고 그름에 있어서 나 자신과 깊히 대화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IZECT PERSONAL LAB > 아이지의 생각과 고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를 억제하는 것이 곧 모든 성공의 지름길.  (0) 2010/10/27
삶을 돌아다보며.  (1) 2010/10/19
컴퓨터, 그리고 정보올림피아드의 추억  (0) 2010/06/30
인맥과 업무  (0) 2010/06/15
글쓰기  (0) 2010/05/02
근황  (0) 2010/04/05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570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어제는 갑자기 야근을 감행하여 갑자기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 와중에 회사에 잠깐 있던 아이폰 개발자 분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알고보니 그 형은(나보다 14살이 많지만 노총각이므로..) 서울대 출신에 나와 같은 병특 출신이다.
때문에 나한테 관심이 많은 가 보다. 또한, 회사에서 작업할 때 나와 관계 없는 분야라도 성심성의것 도움을 드려서 그런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겠지.

여하튼 내가 끼가 많고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물론 많은 얘기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그런 사람을 안 자체로도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최근 회사에서 나의 업무에는 두 가지 큰 변화가 있다. 첫째는 개발에 있어서 더 이상 소소하게 참여하지 않고 회사의 중점이 되는 인트라넷과 메인 홈페이지를 맏는 것, 또 하나는 내가 PM급이 되어서 타 기업과 연계된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가는 것이다.

모두가 나의 사수가 하던 일이지만, 최근 사수는 이제 제안사업 쪽으로 빠지려고 하고 있으니 내부 개발 업무는 다 내게로 들어오는 것이다. 또한, 나의 미래를 위해 PM급을 진행하라 하신다.

글쎄다, 어떤게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이제는 일이 없는 것도 질렸다. 차라리 내가 큰 부분을 가지고 도맡아서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내 스케줄을 설계하고 나가야지. 어차피 이곳에서 많은 발전을 바라는 것 보다는 영어와 개인 능력 정도를 키우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려 하기 때문이니 말이다.

인맥이란 또한 무엇인가. 퇴근길에 우리 부서 부장님과 같이 퇴근했는데 이미 이 바닥에서는 도가 트신 분이다. 사람 관리를 하시는 분인데 IT쪽에 30년 정도 계셨기 때문에 큰 흐름을 잘 파악하고 계신다.
그런 분을 아는 것이 내겐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나는 사람을 알아가는 데 있어서 항상 내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곤 한다.
이러한 나의 모습은 올바른 면모일까?

아직은 생각이 많을 뿐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IZECT PERSONAL LAB > 아이지의 생각과 고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삶을 돌아다보며.  (1) 2010/10/19
컴퓨터, 그리고 정보올림피아드의 추억  (0) 2010/06/30
인맥과 업무  (0) 2010/06/15
글쓰기  (0) 2010/05/02
근황  (0) 2010/04/05
나홀로.  (0) 2010/02/17
Posted by 아이지
 TAG 업무, 인맥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56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글쓰는 습관이 점차 사라진다.

블로그를 두개로 나누어서 그럴까? 아니면 이건 새로운 삶에 대한 변모인가?

피곤함은 계속되고, 왠지 모르게 삶이 재미가 없다.

물론 개인적인 성취감은 있지만 업무적으로는 정말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일생이 지겹다.

 

이런걸 역으로 생각해서 기회라 여겨야 할까?

심지어 너무 루즈한 나머지, 내가 농담을 꺼내곤 할 정도니 말이다.

귀찮은 일이 좀 있긴 하지만, 그런건 아무렴 좋지 않는가.

 

정말로 낼 모래이면 이 지긋지긋한 병특도 어엿 1년째이다. 앞으로 남은 22개월이 참 끝이 안보이긴 하지만.. 일단은 난 최소한의 나의 의리는 지켰다 생각하며, 나의 좀 더 편안한 삶을 위해 협상할 일이 몇몇 남아 있긴 하다. 남아있는다? 그건 회사가 어떤 입장을 보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 무엇을 가지고 내게 들이댈 것인가. 글쎄 난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개인을 위한 투자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언가 요즘 상당히 나태해 졌다는 기분이 엄청나게 드는데, 이러한 마음 확실히 가다듬어야 한다. 무언가 생각나면 계속 그쪽에 빠지게 되서 벌어놓은 일이 마무리가 전혀 안되니 원.. 이러한 나의 태도는 벌써 몇일째 반복되고 있는가? 하아..

 

조금 더 나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가 필요하겠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IZECT PERSONAL LAB > 아이지의 생각과 고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컴퓨터, 그리고 정보올림피아드의 추억  (0) 2010/06/30
인맥과 업무  (0) 2010/06/15
글쓰기  (0) 2010/05/02
근황  (0) 2010/04/05
나홀로.  (0) 2010/02/17
방황도 한편의 시(poem) 인가.  (0) 2010/02/16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55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훈련소를 다녀와서 그런가, 블로그 포스팅에도 익숙치 못하고 주말 내내 내가 뭘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평소에 내가 했던 것들을 해 보지만, 그것도 뭔가 아닌 것 같다. 결국 주말에는 계속 쉬다가 끝이 나고 말았다.

그놈의 훈련소가 뭔지, 가서 걸려온 감기가 1주일 내내 가서 정말 이번주 내내 감기를 달고 살았다. 이 지독한 감기는 어머니에게까지 옮겨져서 지금 계속 기침을 하고 계신다. 그리고 나 역시도 기침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6차례나 병원 방문, 7번의 주사, x-ray, 혈액검사 등 내가 감기 하나 때문에 이렇게 많이 검사해보고 치료한 것도 처음이다. 참 신기한 일이지.

사회에 나와 보니 아이패드가 나왔단다. 난 그리고 아이패드를 통한 애플의 정책에서 조금은 미래를 읽을 수 있었는데, 그로 인해 내가 또 추구해야 하는 방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성립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러한 방향 설립에는 이번 마소(마이크로소프트웨어) 4월호가 한 몫을 더해주었다.

회사는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가 없는 한달의 공백이 참 그들에게는 길었나 보다. 기쁘게 반겨주는 팀장님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한달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길래, 중간에 장염도 걸리고 뭐 그랬다고 하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회사 분위기가 좀 좋아진 감이 없지않아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웃긴건 나의 태도이다. 업무시간에 거의 딴짓을 안하게 되더라. 그리고 일을 받으면 즉각즉각 처리하게 된다. 어찌 된 영문일까? 군대에서 아마 이런 태도를 배워서 그런 게 아닌가 조심스래 추측해 본다. 생각이 나면 즉각즉각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결국 저번주는 하루 빼고 야근을 안했다. 좋은 현상일까?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내 말투는 "다"나 "까"로 바뀌었고, 감기는 아직 낫지 않았지만 호전되었고. 그래도 나는 피아노를 쳤다. 피아노는 정말 내 마음의 풍금이랄까, 어떠한 잡념이 있어도 피아노를 치면 정화가 된다. 그리고, 피아노를 치며 나는 예술의 깊이를 깨닿는다.

뭐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요즘 들어 좀 더 Art한 것들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파악하고 있다. 나의 친한 친구 중 하나는 게임개발자가 꿈이다. 그런데, 다른 개발자들과 좀 달리 자신은 기획/플밍/디자인 등 모든 것을 혼자서 다 하는 것이 꿈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해? 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와서 그런 나의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아니, 나는 기술적 기반에 창의성을 더해줄 수 있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닳은 듯 했다.

감성이라, 딱딱한 프로그래밍 언어보다는 나는 개발을 하더라도 감성을 교류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항상 개발을 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인터페이스나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플밍도 하나의 예술로 보고 싶다는게 나의 취지. 그리고, 그러한 플밍을 단순히 개발 언어로 보지 않고 색채적인 것도, 음향적인 것도 모두 프로그래밍으로 치부하고 싶다는 것이 나의 생각.

욕심일까, 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공부하고 배워나간 대로 키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알고리즘을 막 다루다가 디자인을 찔끔거리다가 SNS에 대해 연구하다가 결국 이것들이 융합된 형태로 나의 소망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옛날 윈도우가 나오면서 CUI에 익숙한 사람들을 그래픽의 세계로 인도했듯이, 나는 이제 사람들을 감성의 세계로 인도하려고 하고 있다.

뭐 그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것은 아니겠지만, 차차 발전하고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건 뭐 쓰다보니 근황이 근황답지 않게 쓰여졌다.. 빨리 글쓰던 습관이여 다시 부활하라... ㅜ.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IZECT PERSONAL LAB > 아이지의 생각과 고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맥과 업무  (0) 2010/06/15
글쓰기  (0) 2010/05/02
근황  (0) 2010/04/05
나홀로.  (0) 2010/02/17
방황도 한편의 시(poem) 인가.  (0) 2010/02/16
무기력함  (0) 2010/02/10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55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군대 늦게 간 친구들 조차 군대 제대를 하고.
벌써 제대 후 1년이 지난 친구들도 있고.
시간은 빠른데 나는 아직도 그대로이다. 아직도 2년이나 남았다.

기회인가 좌절인가.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그래도 한편으로 드는 것은 내가 왜 그때 사업을 빨리 접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들.
글쎄, 득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이러한 것들이 내게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될 때도 있다.

운명이라 해야 하나? 필연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지금처럼 살다가는 죽도 밥도 안되겠다.

훈련소를 앞두고 이것 저것 생각이 많아진다. 남은 기간동안 포트폴리오 사이트나 완벽하게 구상해 봐야 겠다. 흠..그래 어떻게 보면 기회지 이것들도. 2년이란 시간동안 돈도 벌고 내 시간도 만들고 할 수 있으니깐.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IZECT PERSONAL LAB > 아이지의 생각과 고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쓰기  (0) 2010/05/02
근황  (0) 2010/04/05
나홀로.  (0) 2010/02/17
방황도 한편의 시(poem) 인가.  (0) 2010/02/16
무기력함  (0) 2010/02/10
그 소용돌이치는 열정은 내 손에서 완성되어 간다.  (0) 2010/01/15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54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프레데레크 쇼팽. 그 이름만 들어도 사실 나는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이름이다. 그의 짧은 생애가 슬픈 것이 아닌 한편의 시와도 같은 그의 음악들을 머리속에 떠올릴 때마다 느끼는 자연스러운 나의 감성이 뒤섞여서 무의식중에 분출되는 것 과도 같다.

그의 곡들은 누구에게도 유명하다. 녹턴, 에튀드, 발라드 등등.. 그는 짧은 생애였지만 피아노 선율을 통해 그의 시를 완성시켰다.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마주르카와 녹턴에만 몰두하고 마주르카 바 단조를 마지막으로 그의 39년 짦은 인생은 막을 내렸다.

3주만에 나는 내 방을 청소했다. 잠시 밖에 나가 뮤즈의 United States Of Eurasia 를 들으며 걸었다. 그들의 이 곡이 내게 의미 있는 이유는 마지막 부분의 쇼팽의 야상곡 내림 마 장조 때문이다. 이 곡은 내가 초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쳐본 클래식 곡이기 때문이다.

호기심 많은 한 아이는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출장에 다녀오면서 사오시는 CD음반들을 즐겨 들었다. 올드팝스, 영화음악 Best등. Stand by me 에서부터 pretty woman까지. 당시에는 영화의 "영"자도 모르는 아이는 매일 자신이 마치 악기라도 된 마냥 기타음을 흥얼거리고 노래를 따라불렀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이던 아버지께서는 마침내 그 아이가 처음으로 듣게 된 클래식 음악들이 모여 있는 "THE IMPERIAL CLASSIC"이라는 CD를 주게 되었다. 컴퓨터에만 푹 빠져살던 그 아이에게 새로운 클래식이라는 세상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매일같이 stand by me만 주저리 거리던 아이는 어느새 집에 있던 업라인 피아노 앞에서 도레미를 음이 맞던 안맞던 두들기고 있었다.

그렇게 알게 된 피아노와 클래식은 아이의 성격을 뒤바꿔 놓았다. 워낙 천방지축이던 아이는 이것 저것 사고를 치는 것이 일상이었고 결국 그 자상한 아버지의 손에 매를 쥐게 만들었다. 어린 나이에도 어디서 본 것은 있어가지고는, 자살한다는 등의 부모 앞에서 입에 담기도 힘든 말을 마구마구 내뱉으며 골치덩이로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피아노는 그런 그를 바꿔놓았다. 이제 피아노가 그 아이의 마음을 정화시켜 놓는다. 악한 마음이 아무리 그 아이의 마음을 뒤감고 있어도 "도"라는 음부터 "시"라는 음까지, 88개의 건반에 손을 닿는 순간 신기하게도 그의 마음은 안정화 되고 다시 방황의 상태는 제자리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평상시와 같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

이렇던 나였다. 학창 시절은 그 무엇보다 피아노가 내게 소중했다. 잘 치지는 못하지만, 어렵지 않은 몇몇 곡들을 수십번씩 쳐가면서 어렵든 쉽든 마음을 다스려 나갈 수 있었고, 이러한 것이 원동력이 되어서 다행이도 대학까지는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입학 선물로 부모님은 선듯 신디사이저를 사주기에 이른다.

하지만 20살이 되고 나서 나는 뜻밖의 욕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업이란 것과 성인으로써 나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혼란스러움, 그리고 빨리 독립하고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 이외에도 학문에 대한 욕심, 외모에 대한 욕심 등 예전에 내가 그랬듯이 수 많은 욕망과 욕심들이 다시금 나의 마음을 혼란속에 가두고 말았다.

그러나 나의 손에서 점점 피아노는 멀어져 갔다. 매일같이 쉬운 곡을 찾아대며 매일같이 그 짧은 시간 동안 피아노를 한곡이라도 치려고 안달하던 10대때의 나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마음을 정화하던 모습, 나의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그리고 방황을 하기 시작하면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

오늘 비로서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엉망인 방을 청소할 수 있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너무 눈치만 보며 삶을 살아가다 보니 나 자신과 이 블로그에서 솔직한 대화를 할 수 없었다. king of the superficial, 그렇다. 점점 나 자신을 가식속으로 채우고 있던 것이다. 내가 아닌 나의 모습으로 나를 채우고 있던 것이다.

나는 나를 알았다. 나의 속삭임을 알아채렸다. 그리고 비로서 이 모든 방황이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예전부터 나 자신에게 그토록 중시하던 mind control, 이것을 잊고 살았다. 그것이 내게 가장 큰 실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3주정도 넘게 나 자신을 초점을 못잡고 흐트러지게 만들었고, 삶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나쁜 것들.. 허나 무엇을 욕할 것인가. 온 세상에는 유혹이 넘쳐나고, 잘못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정말 끝도없는 진흙탕물이 넘쳐나고 있다. 그렇다. 내가 눈치채기 전까지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내면의 또 다른 나를 눈치채야 한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우리의 몸과 마음 속에 자기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

#

편해진 마음 속에, 앞으로 남은 10일은 편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솟구치는 악의 손길을 뿌리치자. 무엇보다 내가 지금까지 느꼇던 악의 손길이라 생각하는 것을 생각해보고, 항상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내게 주어진 길, 그리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것을 진지하게 나 자신과 이야기 나누어 보자.

[ ! ]

그렇게 쇼팽을 통해 마무리 진 나의 방황. 짧지만 고통스러웠다. 이상하게도 몇년 전부터는 꼭 1년에 한번 씩은 이렇게 찾아오더라. 무언가 목표를 한번 잃고 나면 헤어나올 수 없는 내 자신을 말이다.

그리고 나는 훈련소 이후에 다시 작곡을 시작할 것이다. 아직 이론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진지간히 하고 싶다. 이와 같이 그간 집중하지 못했던 영어에 대한 투자. 그리고 프로그래밍. 이것은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예술과 기술, 그리고 미래.

삼각구도가 잘 어울러진 멋진 삶을 꿈꿀 수 있도록.

lose control, increasing pace.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IZECT PERSONAL LAB > 아이지의 생각과 고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황  (0) 2010/04/05
나홀로.  (0) 2010/02/17
방황도 한편의 시(poem) 인가.  (0) 2010/02/16
무기력함  (0) 2010/02/10
그 소용돌이치는 열정은 내 손에서 완성되어 간다.  (0) 2010/01/15
온라인 소통 왕따  (0) 2010/01/10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54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삶이란게 이런 것일까.
무언가를 고쳐야 할텐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그때가 얼마나 두려운 때인지.

아무도 알 도리도 없고 나 자신도 답을 찾기가 힘들다.
냉정함을 찾고 답을 추구해야 하는데 항상 이성이 앞서다 보니 잘 풀릴 일도 안될때가 많다.


3일 내내 나는 거의 아무것도 안하고 집에 와서 예전에 그런 것 처럼 뮤즈의 노래를 들으며 머리를 심하게 흔들었다. 밤이면 아무것도 안보이는 텅 빈 공간에, 단지 내 귀에서 울려퍼지는 뮤즈의 음악들. Limp Bizkit에 이어, X Japan과 Bon jovi, Judas Priest에 이어 나의 3rd인 뮤즈는 나를 흥겹게, 그리고 즐겁게 한다.

무엇을 해도 즐겁지가 않다. 지난 주말에는 영화를 무려 네 편이나 보고 드라마를 보든 쇼프로를 보든 그때만 웃음이 잠시 나올 뿐이지, 혼자있을 때엔 즐거운 것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왜 이리 무기력해 졌을까..?

결국 난 아직도 변화에 잘 익숙치가 않은 까닭일 것이다. 가장 크게 오고가는 것은 대인관계, 그리고 얼마 후에 훈련소를 가야한다는 압박감. 주변 사람들의 고통, 이건 뭐 죄다 나의 발목을 잡고 있구나.

글쎄다..
일하기도 싫고, 내가 설계한 룰 속에 발을 담그기도 싫다. 그저 놀고만 싶고, 놀고 있다.

나의 존재란 무엇일까.
깊은 고찰 속에 한번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인 것 같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546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2월 25일 훈련소 입소를 앞두고 살짝 마음속의 동요가 있는 것 같다. 기대반 걱정반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겠지만 무언가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어떻게 탈바꿈 될 것인지 그것이 가장 큰 기대요, 허나 한달여간의 공백에 또한 내가 놓치는 기술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나머지 절반의 걱정이다.

나는 기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물론, 이 프로그래밍과 IT technology가 좋아서 이 분야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IT기술이라는 것을 컴퓨터를 처음 만진 20년 전과 비교해 보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크게 편의를 추구하여 발전하고 나아갔는지 그것을 나는 보았고 앞으로도 이 분야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끝없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웹이라는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되어 있고, 또한 그것은 요근래 클라우딩이라는 것으로 또 뭉치곤 하고 거의 무한한 데이터를 치부하기에 이른다. 구글이 그렇고 네이버 또한 그렇다. 개개인에게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개개인의 커다란 데이터를 얻어오려고 노력한다.

결국 이런 행동들은 기업이 정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석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용자가 원하는 서비스가 나오고, 좀 더 편리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기업들은 M&A를 계속한다. 작은 벤처 기업들은 계속해서 큰 기업에 먹히고 거대한 기업들끼리 싸운다.

뭐 그런 기업 판국에 부정적인 이미지는 많지 않지만 가끔은 win-win 가끔은 적이 되는 것처럼(애플과 구글이 항상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세상은 점점 무한 경쟁의 사회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 한 구석에 나 아이지라는 작은 아이가 존재하고 있다. 아직 영어도 잘 못하고 기술력도 뛰어나지 못하다. 누군들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나는 작은 아이에 불과하고 대학 졸업하고 사회 나가서 뭐달고 뭐달고 그러다가 안되면 자영업이나 벤처 해보고 뭐 그런.

평범함이 싫어서 나는 벤처를 택했고, 병역특례를 택했다. 그리고 나는 말하고 싶다. 무한 경쟁의 세계에서 더 이상 한국 고유의 Rules 은 먹혀들지 않는다고.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 대학 SKY를 나온다 해서 미국 개발시장에서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학사, 석사 등의 학력만 평가한다. 그리고 나는 단순히 평범한 개발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내가 왜 이렇게 Different를 강조하는가? 그것은 시야를 넓게 갖지 않으면 우리는 좁은 시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 똑같은 사람들의 인생으로 접어들게 되고 똑같이 회사의 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비단 회사의 룰이 아니라도 시야를 넓게 가지면 자신이 다양한 것을 접하는 데 부담이 없어진다. 우리가 말하는 전문가라는 것은 무엇인가. 단지 하나의 기술만 깊이 아는 것이 전문가인가? 우리 회사의 나의 상사는 익숙한 것이 아니면 먼저 겁부터 낸다. 인터프리터 언어인 PHP기술이 전문인데 컴파일 언어인 자바를 하려고 해도 class파일을 교체해 주고 깊숙한 부분을 건들 때에는 WAS를 리붓해야 한다고 하니 기겁한다. 왜 그런지를 알고 무엇이 편한지를 알면 분명 자바에 깊히 빠져들 수 있는데 말이다.

겁을 내선 안된다. 이것은 결국 시야를 넓게 가지지 않으면 그저 하나밖에 모르는 바보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왜 단순히 내가 어리고 젊기 때문에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것일까? 대세가 바뀌어 자신의 주 스킬을 바꿔야 할 때 과감히 바꿀 수 있는 그 능력은 다름아닌 다양한 기술을 아는 것, 즉 넓은 시야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올 한해 다양한 기술을 접하고 다방면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나아가야 할 듯 싶다. 남들과 다름을 항상 추구하면서 그 가운데서도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항상 어떤게 옳고 그른건지 판단가치를 정하고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겠다.

# 못다한 이야기 =======================
- 아 훈련소 2월 25일날 작년에는 눈왔다고 하는데 조금 걱정된다.
- 건강검진 결과가 오늘 나왔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좀 높아서 현실을 실감했다.
- 앞으로 숭실대입구역에서 집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거리는 약 4.48km 다음 지도상으로 1시간 걸리는데 하루에 1시간은 걸어줘야지 당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487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요즘 한창 뜬다뜬다 하는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미투데이니.. 블로그를 하는 입장에서 사실 온라인 안에서의 그러한 커뮤니티 활동이 중요하다고는 생각되긴 하고, 이를 통해 나도 듣고 얻는 정보도 많고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향이 많다고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요 근래 드는 생각은 온라인 소통, 그것은 단순히 대세가 아닌가 싶다. 트위터? 재밌긴 하고 정보도 실시간으로 얻는다. 하지만 이를 그냥 바라보면 서로 얼굴도 안본 사람들이 조금 마음이 맞으면 일종의 소통을 한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날 확률은? 음 글쎄다, 아무래도 적지 않을까 싶다.

지난번에 CCK라는 세미나를 간 적이 있다. 나는 거기서 발표를 하는 것만 듣고는 바로 나와버렸다. 사람들은 약 200여명이 참석한 듯 한데 왜? 사실 나는 거기서 낄 공간이 없었다. 다들 아이폰을 들고 트위팅을 하는 사람들이 이제 오프라인에서 만난 것이다. 그리고 서로 닉네임을 주고 받으면서 대화를 한다.(물론 전부다 그랬다는 말은 아니다.) 참 그런 것을 보는 느낌은 다른게 아니라 그저 온라인을 잠시 오프라인으로 옮겨둔 느낌? 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거기에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휴식 시간이라는데 대화할 사람도 없고, 그야말로 온라인의 왕따가 오프라인에서 왕따일까? 라는 회의감 까지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오프라인의 힘을 믿는다. 온라인은 그저 오프라인을 좀 더 편리하게 연결해 주는 수단일 뿐이다. 결국 본질은 아마 오프라인에 있지 않을까?

그래서 실상이 중요하다는 것 같다. 물론, 정보를 캐치하고 공유하는 것은 훌륭한 정보교류 활동이다.그런데 단순히 댓글놀이를 하면서 즐기는 것. 그것은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흥을 돋구는 일일 뿐(뜻밖의 정보를 캐치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트위터를 하면서,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물론 만족감이야 느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찌 보면 보이지 않는 허구속에서의 삶일 뿐이다. 마치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냥 생각하게 되면 그건 큰 오산이 아닐까. 말그대로 이 수단이라는 것을 잘 활용해서 자신을 가치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그저 허세에 빠져서 실상 즉 오프라인의 세계는 져버리고 가상현실속에서 살아간다면 나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오프라인을 믿는다. 다만 온라인을 통해 나의 생각에 대하여 좀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생각을 듣고 우물 안의 개구리를 탈피하는 것이 소통의 올바른 길이 아닐까.

아 참 오랜만에 말해보는 쓸때없는 잡념이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484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이젝트(아이지의 프로젝트를 총칭)의 developer 부분을 드디어 고정시킬 수 있게 되었다.  web/ria/mobile 내가 관심있어 하는 3가지의 부분들로 정해지고 이들간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나의 skill을 업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세가지의 방향 전부 회사에서 내가 어느정도의 입지를 구축해둔 부분이다. 하지만 si,sm을 주로 하는 회사에서 내 실력을 발휘하기란 절대 쉽지는 않고 그래서 개인개발을 주로 해야 할듯 싶다. 웹과 모바일 서비스를 위주로, mashup 및 widget을 기반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구축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또한 필요한 것이 정보력. 정보력을 높히기 위해서는 다른게 없다. 외국어 실력을 높혀야 한다. 최종적으로 내가 추구하고 있는 CEO에 빗대서 인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foreign_language부분을 업그래이드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가장 크게 목표로 삼는 것은 "모바일 전문가" 물론 이것은 내 인생의 여러 목표에 있어서 일부분이긴 하지만 당장의 병역특례 생활은 모바일 전문가를 기반으로 크게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또한 새해와 더불어 훈련소 날짜가 나왔다. 2월 25일로 4주간의 훈련을 받게 되는데 물론 생일을 부대에서 보내게 되어서 조금 슬프긴 하지만 남들은 2년 다녀오는 군대를 1달만 갔다오는 것에 의의를 둔다. 그리고 올해 개인적으로 가장 큰 목표가 "다이어트" 였는데 이를 상반기에 이룰 수 있으면 하반기에 좀 더 다양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물론 1달 다녀온다고 쉽게 살이 빠지겠나 싶지만 솔직히 말해서 24살이 다 되어갈때까지 활동적인 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도저히 이 개발자라는,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보면 책상에 앉아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좀 더 기대가 되는 것 같다. 2월 25일이라, 새해 초부터 한달간 이 "사회" 라는 곳을 벗어나서 있으면 어떻게 내가 변하게 될지 참 많은 기대가 되지만 일단은 회사 내에서 인수인계 정리와 약 두달간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어쨌든 가장 중요한 것은 트랜드. 하루도 빠짐없이 정보를 수집하고 정보와 더불어 기술을 접해야 하겠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486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스키장을 갔다가 갑작스런 대설에 고속도로에 4시간을 같혀있다가 집에 와서 블로그를 확인해 보니 네이버 오픈캐스트? 거기에 아이폰 관련 글이 등록되어 있었다.
지난주에는 다음뷰 베스트고 이번에는 네이버 메인인가.. 뭐 방문자 는다는 것에는 누군들 안좋아 하겠는가. 하지만, 난 이번에 이 네티즌들의 힘을 느끼게 되었고 무엇보다 메타 사이트에 등록할 때에는 최소한의 개인적인 감정은 배제하고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발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뷰에 발행한 글은 나름대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어서 호응이 높았지만, 네이버에 등록된 글은 정보전달보다는 개인적인 아쉬움+답답함, 즉 감정이 섞여있는 글이어서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한심한 글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 블로그가 아직은 크게 정보전달의 목적 보다는 일종의 삶의 기록, 즉 개인적인 의미가 강한 블로그이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악플은 무지무지 싫어하므로(대응하는것도 싫고, 악플 다는것도 싫고..) 조용히 있으려면 포스팅 하나 하나에 그렇게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직 내게 전문가적인 능력이 있지 않는 이상 말이다.

고로 닥치고 공부나 하자.. =ㅅ=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478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때, 내가 좋아하는 컴퓨터만 하다가 하도 성적이 나오지 않은 까닭에 어머니께서 배란다로 책상을 옮기고 거기에 나를 가두고 하루 3~4시간씩 공부를 시켜서 겨우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었다.

고등학교를 잘 가려고 했던 정보 올림피아드 공부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대학을 가려고 했던 정보올림피아드 공부는 결과적으로 도 대회 입상에 만족했어야 했다.
상장이나 받아보자 하고 준비했던 게임경시대회 하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고2 말에 모든 프로그래밍 공부 및 개발을 중단하고, 아예 프로그래밍 세계를 잠시 떠났었다.

대학 와서는 어떠한가? 나는 내가 좋아하는 개발을 위해 벤처까지 운영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쓰라린 실패의 기억뿐.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가장 부족한 것은 기본이 아니었을까 싶다. 워낙 빨리 접한 컴퓨터 탓에 기초교과목과 책을 등한시 하고 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판단이다.

분명히 늦었다. 하지만 가장 좋은 기회를 잡은 지금. 다른 친구들이 군대에 있을 때 나는 프로그래밍에 대한 실무와 이론을 공부하면서 트랜드까지 파악할 수 있고, 퇴근 이후 개인 시간이 보장되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CEO가 되고자 하는 욕심은 있었다. 욕심이 앞서서 그저 허구 속에 나의 현실을 감춰왔던 것이다. 좋아하는 것만 하다 보니 매 한해 한해가 허무하게 지나가곤 하였다.

당분간 기초가 완성된 나 자신을 위해, 뭐 어차피 가장 중요한 것은 "영어"이겠지만.. 이것 만이라도 이 군 시절에 완성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성공한 것이다. 더불어 건강과 좋은 습관까지 잡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퍼펙트 한 나 자신을 20대 초,중반에 배출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나도 온종일 프로그래밍만 하고 싶고, 온종일 게임만 하고 싶고 영화만 보고 싶고 만화나 보고 싶고.. 그런 욕심은 끝없이 치솟아 있지만, 그 욕심의 가치를 하나 하나 여기면서 조절할 필요가 있나 보다.

진짜 루저(looser)는 키가 180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컨트롤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좌우간 열심히 해야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453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장난 없다. 어제 KBS 미녀들의 수다에 나온 홍대 경영학과 이도경 양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이유는 바로 "키 작은 남자는 패배자, Loser(루저)" 라는 발언 때문이다.

이외에도 "월세방 사는 장동건과 마주앉아 라면먹는것은 싫다." 그리고 독일 미르야의 "자기가 먹여 살리면 되는 것 아닌가? 자기 능력을 키우는게 중요하지 않는가?" 라는 반론에 "그래도 나의 기준은 나보다는 나아야 한다." 라는 고집을 펼쳤다.

사실 그것이 어찌 보면 여자들의 욕심일 수도 있다. 이쁘고 착하고 마음맞고 몸매좋고 그런 여자를 바라는 일반적인 남자들과도 비슷한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러한 발언을 이런 공영방송에서 했다는 자체가 문제다. 이 방송은 귀족에게 특화된 방송인가? 내가 공대에 다니는데 내 또래에 키 180cm을 넘는 친구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물며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와서 정말 자급자족 하려고 젊은 때부터 이것 저것 아르바이트 하면서 죽어라 돈벌고, 학비벌고.. 정말 일반적으로 돈있는 집안 남자들이 아닌 이상, 알바는 당연지사에다가 공부도 해야지, 잠자리에 들 시간조차 부족한게 현실이다.

키 180cm에 잘생긴 남자들? 내 경험상 그런 사람 치고는 잘 된 케이스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잘생긴거 믿고 학창시절 여러 여자들 울리며 다니다가 놀다가, 그러다가 대학도 잘 못 간다. 어디 지방대나 겨우 갈 정도이지..



문제는 현실이다. 경제가 어렵지 않은가, 학비만 해도.. 우리 학교 우리과도 한학기 등록금이 500 전후에 가깝다. 이러니 남자들은 점점 암담해 진다. 직장은 구하지 못하고 대기업 취직에 실패하자 결국 중소기업에 겨우 취직하고, 특히나 공대생들은 젊은 시절을 회사의 끝없는 야근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억, 억 이런 돈 벌기가 쉬운가.. 20대에 집 한채 사는 것이 쉬운가..

여자들도 결국 경제가 어렵다 보니 이뻐지고, 몸매 관리만 하다 보니 돈많고, 잘생기고, 키크고 경제력 있고 미래 있는 남자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여자들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고 최소한 자신에게 먼저 자립할 수 있는 어느정도의 투자를 한 후에, 그 레벨에 맞게 그런 조건의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사실 꼭 저 루저녀를 100% 비판하기는 싫다. 내 솔직히 180cm은 남자들한테 잔인한 비판의 소리로밖에 안들리고(180cm넘지 못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런 소리를 하고 앉았나..) 경제력, 미래, 비전 등에 대해서는 그런 것을 추구하는 여성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비단 남자들에게만 해당되지 않고 꿈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하건데 자신의 꿈과 비전에 대한 노력 만큼(여기서 꿈과 비전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의지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것을 말한다!) 원하는 배우자 혹은 이성친구를 얻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치에 맞지 않으니깐 우리 사회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먼저 자기 자신부터 좀 노력을 하고..(남자 잘 만나려고 살을 막 20kg씩 뺀다? 이런건 정말 용납이 안된다.) 멋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아이지

트랙백 주소 http://izect.kr/trackback/442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Favicon of http://hisastro.textcube.com BlogIcon 그별 2009/11/11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넘기기엔 작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토록 이슈화될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도 하였습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 그냥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치부하면 어떨까요?... 물론 공영방송이라는 KBS의 추태는 봐줄래야 봐줄 수가 없습니다.
    어리다면 어린 대학생에게... 방송의 힘으로 떠넘기기 식의 태도도 어처구니가 없구요... 생각없이 언행을 한 저 여학생도 그렇긴 합니다만, 마음적으로 안됐다 싶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_ _)

    • Favicon of http://izect.kr BlogIcon 아이지 2009/11/11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어제 저녁에 욱해서 쓴 감이 없지않아 있군요; 이슈화 될 필요는 없는데 제가 그 대열에 동참하고 있나 봅니다;
      그나저나 언론의 저런 플레이는 참으로 이해 안가네요.. 저보다도 어린 대학생 같은데 말이죠 ㅜ 악플 등으로 한사람을 죽음까지 몰고갈 수 있을텐데 말이죠 ㅜㅜ

  2. Favicon of http://mahabanya.com BlogIcon mahabanya 2009/11/12 0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 통계도 잘 모르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나라 남성의 평균 신장과 표준편차가 얼마인데 ㅋㅋ

    아, 이걸로 글이나 하나 써 볼까?

  3. Favicon of http://kkommy.com BlogIcon 꼬미 2009/11/12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인 기준이니 뭐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공영방송에서 여과없이 나가서 문제가 되긴 했던거 같아요.. ^^;;;;;
    뭐, 키가.. 문제가 되나요.. ㅋ

이전버튼 1 2 3 4 이전버튼



블로그 이미지
html5,모바일웹,웹앱,자기브랜드,시간관리 등을 다룹니다.
아이지

Yesterday190
Today119
Total479,909

달력

 « |  » 2012.0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